나는 원망한다

 

누구를? 세일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사게 만든 지름신, 폴아웃3로 한껏 기대하게 만들었던 개발사, 그리고 기대에 못미친 폴아웃4를 원망한다. 스팀 라이브러리를 둘러보다 먼지를 덮어써(?) 회색빛인 게임목록을 보고 있노라니 폴아웃4가 눈에 띄었다.

출시와 동시에 큰맘먹고 질렀던 게임이지만 이미 내 하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향상된 그래픽(?), 새로운 도시, 개선된 VATS 시스템, 정착지 건설, 변화된 Perk/SPECIAL 등등은 출시전 유튜브 맛보기 영상을 보며 우와를 연발했던 요소다.

폴아웃4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게임은 일단 어느 정도의 퀄리티는 뽑아주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인지 모르겠다.  폴아웃4에서 왜인지 GTA5를 플레이 했을 때의 기분이 느껴졌다. 익숙함이라기 보다는 조금 더 부정적인 뭔가가 떠올랐다.

이번 포스팅은 사실 리뷰라기 보다는 돈이 아까워서 쓴 넋두리에 가깝다. 그러니 게임을 이미 구매했거나 구매의지가 확실한 분은 반드시 스킵하길 바란다.

 

6만5천원!!!!

 

게임은 무조건 정품이다. 갑자기 무슨소리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불법다운로드가 판치는 이 세상, 그렇기에 정품은 더 큰 의미가 있다. 정품사용자는 돈을 지불함으로써 게임을 '구매'하고, 개발자를 '격려'하고, 차기작에 '투자'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돈 한 푼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 것 아니냐고 누군가는 불쾌해할지 모르겠다. 어찌됐든 이 블로그에서 가성비를 굉장히 따지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내가 욕심쟁이어서인지 몰라도 정품을 샀는데 만족하지 못하면 돈 생각이 난다.

가성비 측면에서 폴아웃4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다만, 폴아웃 시리즈를 경험해보지 못했던 게이머라면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기존 시리즈 경험이 있는 게이머라면... 굳이 지금 비싼 돈을 지불해가면서 플레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세일을 노리는 것을 추천한다.

 

Perk/S.P.E.C.I.A.L은 폴아웃 시리즈의 캐릭터 성장 특전과 능력치 시스템을 일컫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최고의 능력, 극한의 효율 보다는 재미를 추구하도록 설계된다. 예를 들자면, 힘이 세면 속도가 느리고 몸이 튼튼하면 머리가 나쁜 식이다. 완벽한 캐릭터를 만들 수 없기에 여러 번 플레이하면서 이것 저것 해보는 재미가 있다. 캐릭터 특성과 특전을 나타내는 Trait과 Perk에도 개발사의 톡톡 튀는 센스가 묻어 나온다. 문제는 폴아웃4에서는 이 시스템이 너무 캐쥬얼화 되어 그 매력을 잃었다. 능력치/특성창에서 플레이어를 반겨주는 핍보이만 예전 같을 뿐 나머지는 전작만 못하다.

PERK와SPECIAL이 합쳐졌다

레벨을 올리다보면 모든 능력치 모든 능력을 다 획득할 수 있다. 게임에서 해볼 수 있는걸 제약없이 다 할 수 있는게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적절한 부족함이 게임에 흥미를 더해준다는 것은 진리와 같다. 완벽을 추구하면서 사이드퀘스트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든 장비도 다 챙기고 너무 꼼꼼히 플레이하다가 엔딩을 보기도 전에 완전히 질려버리는 경험, 누구나 있을 것이다. 캐릭터 육성도 마찬가지다. 레벨1부터 만렙이 됐을 때의 스탯과 스킬을 고려해서 너무 완벽하게 육성하려고 하다보면 '현재'의 재미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고 뻔히 시스템에서 완벽한 캐릭터를 육성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데 일부러 모자란 캐릭터를 키우는 것도 성미에 맞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사는 기본적으로 적절한 부족함을 시스템에 구현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폴아웃4는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전작에서 필수였던 다양한 플레이 방식이 폴아웃4에서는 단순한 옵션 내지는 요식행위로 전락해버린다. 플레이어의 캐릭터가 머리가 나쁘니까 힘이나 체력으로 극복해낸다든가 비록 자신은 아무런 재주가 없어도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많은 동료의 도움을 받아낸다든가 하는 플레이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레벨을 올려서 모든 상황에 맞는 캐릭터를 육성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퀘스트에서 아쉬움이 남을 일도 없다. 동료도 동료 퀘스트를 위해 데리고 다니는 것일 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무기도 이것저것 다 써보고 별 고민할 필요없이 제일 센녀석을 고르면 된다.

 

다른 게임 장르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RPG의 경우 최강의 적은 마왕도 아니고 악룡도 아니다. 모든 흥미를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먼치킨 주인공이다. 부족함이 없으면 선택할 필요도, 재미도 없다.  주변 동료는 허수아비가 된다. 이야기 전개와 개연성이 망가진다. 일개 개인이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애초에 퀘스트 내용을 따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게임이니까 그렇게 해야한다는 이유밖에 줄 수 없다면 그 게임 스토리는 실패한 것이다. 손 본 것은 능력치 시스템이지만 게임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캐릭터 육성의 다양성이 배제됐다. 다회차 플레이와 플레이 볼륨은 스토리 분기로만 커버해야 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녹록치 않아 보인다.

 

아들 찾아 삼만리

 

폴아웃4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납치된 아들 되찾기다.(배우자 복수는??) 화목했던 가정, 갑자기 터진 핵폭탄, 수용소 대피, 납치, 그리고 게임이 시작된다. 혹자는 이런 스토리 영향으로 폴아웃4 주인공이 어떤 캐릭터인지 이미 정해지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감정이입할 부분이 없어 전작에 비해 흥미가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주인공이 아들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부모로 이미 정해져있다는 것이다. 스토리가 흥미를 더해주는 역할 제대로 못한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그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폴아웃 전작들도 주인공 배경설정은 다 되어있다. 폴아웃1 주인공은 볼트 유지를 위해 워터칩을 찾아나선다. 폴아웃2 주인공은 생존의 위협을 받는 부족의 마지막 희망으로서 '에덴동산'을 창조한다고 알려진 G.E.C.K을 구하기 위해 세상에 첫발을 디딘다. 폴아웃3 주인공은 갑자기 볼트를 떠나버린 아버지를 찾아 떠난다. 폴아웃 뉴베가스 주인공은 중요한 물건을 배달하다 머리에 총을 맞고 생매장 당한 배달부다.

 

따라서 단지 폴아웃4 주인공이 아들 잃은 부모라는 설정 때문에 스토리와 플레이 흥미가 떨어진다는 비판은 옳지 않다. 문제는 이야기가 가지는 확장성이다. 먼저 가까운 전작부터 보면 폴아웃3 최종목표는 사실 아버지를 찾는 것이 아니다. 갑자기 세상에 내던져진 상황에서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목표다. 아버지를 찾는 일은 그 중간과정에 불과하다. 뉴베가스도 복수나 빼앗긴 배달품 회수가 최종목표는 아니다. 이는 단지 더 큰 이야기를 위한 '왜'에 대한 답을 주는 중간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점점 스토리에 빠져들면서 엔딩을 향해 자연스럽게 나아간다.

폴아웃1&2는 최초 주어진 목표가 최종목표인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더 큰 목표가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확장된다. 둘의 방식은 조금 다르긴 해도 둘 다 이야기가 확장되는 시점에 이를 플레이어가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한다. 복선도 충분히 깔았고 암시도 꾸준히 주면서 이야기 전개의 쌩뚱맞음을 제거하고 개연성을 부여한다.

 

안타깝게도 폴아웃4 실패는 이 부분이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캐릭터 설정과 이야기 전개가 서로 잘 맞지 않는다. 처음은 굉장히 흥미 진진하다. 최초 목표는 아들을 찾는 것이다.(자꾸 배우자 복수를 잊는다) 왜 아들을 납치했을까,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게임에 빠져들게 되고 모험에 나서게 된다. 여기까지는 완벽하게 굴러간다. 하지만 이야기가 확장되는 시점에 맥이 풀린다.

 

최종목표인줄 알았던 최초목표는 알고보니 더 큰 이야기를 위한 중간과정이다. 플레이어는 읭? 하게 된다. 이 게임을 여기까지 끌어온 원동력은 아이를 찾고자하는 부모의 절박함이었기 때문이다. '아들 어딨어요 내아들~'하면서 괴물도 죽이고 깡패도 박살내고 여기저기 좌충우돌 할 때만 해도 감정이입에 전혀 문제가 없다.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괴력을 발휘해도, 엄청난 짓을 저질러버려도, 게임적 허용이라든가 부모란 위대한 존재라든가 식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서건(스포방지) 절박함이 사라진 시점에서 주인공이 여러 팩션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사가 될 때는 뭔가 더 그럴싸한 설명이 필요하다.

 

개발사에서 주인공은 세계 운명을 결정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야기를 억지로 우겨넣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차라리 뒷이야기를 덜어내고 아들을 찾는 이야기와 그 과정에 집중했다면 마지막 카타르시스나 여운이 더 컸을 것이다.

 

그 외

 

이번에 새롭게 도입된 대화문 선택 방식도 박한 평가를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여기에 대해선 큰 불만이 없다. 단어만 몇개 바꿔 똑같은 내용을 중2병 걸린 버전, 정상버전, 괴이한 버전으로 억지로 가짓수만 늘리는 것보다 깔끔하게 패드로 선택 가능하게끔 4가지로 한정지은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결과가 다르지 않은데 가짓수만 많은 선택지는 낭비다.

 

정착지 시스템은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심시티 스케일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도시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만약에 차기작이 나온다면 이 시스템은 반드시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폴아웃4에서는 제대로 끌어내지 못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점은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섣불리 이 상태 그대로 메인스토리에 영향을 주게끔 연계했다면 더 엄청난 혹평을 받았을 것이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나 발더스게이트의 요새 시스템보다 더 못하다. 꾸미는데 품이 많이 들고, 이렇다할 혜택도 없으며 별다른 피드백도 보이지 않는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많은 기대를 불러 모았던 파워아머는 과유불급이다. 배트맨 아캄나이트를 플레이해 본 적은 없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배트모빌의 느낌과 같지 않을까 추측한다. 성능이 지나치게 좋고 이용에 큰 제약이 없다보니 흥미를 급감시키는데다가 플레이어에게 강요하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변경된 Perk/능력치 시스템 덕에 안그래도 먼치킨인 주인공이 파워아머를 입는다. 모든 갈등, 위기, 재난 상황은 주인공 앞에선 애들 장난이다. 공포의 대명사 데쓰클로도 게임 초반부터 박살낼 수 있다. 성능은 그대로 유지시킨다 하더라도 이용에 제약을 둬야한다. 밧데리가 부족하다든지, 파워아머가 있는 대신 탄약이 부족하다든지, 능력치에 따른 사용시간 제한이 있다든지, 방법은 많다. 패치에서라도 좀 반영되면 좋겠다.

 

폴아웃4에서 유일하게 높은 점수를 준 부분은 전투다. 확실히 좋아졌다.  아직 다른 게임에 비해 부족한 점은 많지만 일단 피격모션이 굉장히 개선됐다. 타격감도 함께 좋아졌다. 통나무 치는 것 같았던, 아니 그보다 못했던 전작에 비교해보면 엄청난 발전이다. 이제서야 내가 총을 쐈구나 상대가 총을 맞았구나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상세 타격 시스템인 VATS도 전작의 정지화면에서 느리게 시간이 흐르도록 변경된 점도 마음에 든다. 기존 VATS는 플레이어를 너무 나태하게 만드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마냥 느긋하게 플레이 할 수 없다.

 

동료는 전작에 비해 캐릭터설정이 풍부해지고 명령체계가 개선되었다. 기대가 크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서 만족한다.

 

폴아웃4는 용두사미로 끝났다. 이미 마지막 확장팩에 대한 언급도 나온 것을 보면 더욱 확신이 생긴다. 뱀꼬리로 끝나버린 폴아웃4가 획기적으로 좋아질 것 같지 않다. 물론, 말로만 들었던 폴아웃 시리즈를 처음 즐겨보는 사람에겐 단연 추천이다. 앞서 잔뜩 늘어놓은 단점은 전작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절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폴아웃4는 분명히 수작이다. 그러나 폴아웃 시리즈 팬으로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값이 비싸서 아직 지르지 않고 있다면 그대로 계속 참길 바란다. 전작과 비교해서 새롭게 맛보고 즐길만한 요소가 많지 않다. 초조함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원망한다.


(폴아웃3 VS 뉴베가스 간단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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