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주말 뭐 할 게임 없을까

 

게임에서도 '노오력' 해야하는 MMORPG는 접은 지 오래다. 가끔 RPG도 너무 피곤하다. 딱 마음 잡고 스토리 흐름을 따라잡을 만큼 마음이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은 주말뿐, 잠만 자기엔 아깝고 뭔가 해야할 것 같은데 공교롭게도 약속도 없다. 월요일에 대한 불안을 안고 게임을 즐겨야 할 때다. 주말을 잘 보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마음은 초조한데 왠지 기존 보유 타이틀엔 손이 가지 않는다. 요즘 뜨고 있다는 대작게임을 살 수 있는 금전적, 심적 여유가 없다. 가성비 높은 고전게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2016년, 고전게임이라고 해도 이제는 새천년 이후에 출시된 게임들이다. 아기자기함과 스케일을 갖춘 게임 스트롱홀 크루세이더를 소개한다.

 

왜 크루세이더인가

 

중세시대 영주간 전쟁을 다룬 전작과 달리 스트롱홀드 : 크루세이더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십자군 전쟁을 다룬다. 그 말은 즉, 게임 볼륨이 더 크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슬람 진영 추가로 다룰 수 있는 유닛수가 증가했고 전작에 비해 건설 가능한 건물 종류도 다양해졌다. 가격도 비슷하고 게임 틀은 다 똑같은데 볼륨만 더 커졌기 때문에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나는 크루세이더를 추천한다.

 

스케일부터 살펴보자면 기본적으로 이 게임은 공성전을 다룬다. 규모가 작을래야 작을 수가 없다. 적게는 수백 많으면 수천의 병력이 움직인다. 코에이에서 개발한 삼국지 시리즈처럼 수 많은 병력이 단순히 숫자로만 표기되는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X떼처럼 우글우글 몰려다니는 병사를 볼 수 있다. 빠글빠글 병력을 뽑아내던 C&C를 즐기다 기껏 1부대가 12명으로 제한된 스타크래프트에 실망한 나로서는 스트롱홀드가 마음에 들 수밖에 없다.

 

병사 수로만 승부를 보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병종이 준비되어 있다. 압도적인 기동력과 파괴력을 지닌 기사부터 이슬람 진영의 자살(?)특공대 노예까지, 상황에 맞게 골라서 활용할 수 있다. 각 병종마다 필요한 생산 프로세스가 다르므로 무조건 강한 녀석만 뽑는 것은 적어도 초반엔 불가능하다. 적은 자원과 품이 덜드는 병력으로 상성을 맞춰 병력을 구성한다면 어려운 적을 상대해내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병력간 우열, 상성, 장단점이 확실하다는 것은 그만큼 밸런스가 잘 맞는다는 의미다. 간단한 예를 살펴보자면, 압도적인 강력함을 자랑하는 기사라 할지라도 창병한테는 상대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고, 또한 이게임의 가장 중요한 콘텐츠인 공성전에 있어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해자는 누가 메꾼단 말인가!) 물론 그렇다고 상대도 마냥 성안에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다. 공성병기가 성을 박살내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요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때는 다시 기사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그럼 뭐든 다할 수 있는 창병만 뽑으면 되지 않겠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이동속도가 느려 높은 곳에 위치한 궁병의 밥이다. 궁병은 근접전이 벌어지면 모든 병종의 밥이다. 이동력도 빠르면서 원거리 공격도 가능한 이슬람 진영의 기마궁병은 상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성전에서는 활용이 어렵고 잠시 후 다시 설명하겠지만 많은 수를 확보하기 힘들다. 결정적으로 기마궁병은 기사한테 털린다.

 

크루세이더에서 추가된 이슬람 진영은 용병 개념이다. 정규 생산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고 골드로 바로 고용할 수 있다. 아무래도 정규 병력들은 확보에 시간이 많이 걸리다보니 초반에 루즈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슬람 진영 추가로 이 부분이 많이 개선되었다. 용병 특성상 미리 많이 확보하기는 힘들지만 필요할 때는 순간적으로 대량의 병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변칙적인 플레이가 가능하다. 병종도 변칙적인 플레이를 보조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싼 가격, 비교적 높은 기동력, 낮은 체력, 막강한 파괴력(자기자신도 파괴할 정도...)으로 무장한 방화노예들은 초반에 순간적으로 상대 시설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다. 돌팔매병도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상대 생산인력만 쏙쏙 골라 죽이기 좋다. 그렇지만 세력이 자리잡기 시작하는 초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이 녀석들의 힘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불공격은 소방대로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궁수와 감시탑만 확보하면 공격 자체를 쉽게 막을 수 있다. 이 시점에서는 강력한 용병을 고용해서 정규 병력을 상대할 수도 있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비용이 높아 정규병력만큼 많은 수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공성전하면 빠질 수 없는 공성병기도 여러 종류 등장한다. 요새 위치, 지형, 병력 구성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최적의 공성병기를 선택해야 한다. 정면 돌파를 위해 성문을 박살낼 수도 있고 앞에서 교란 작전을 펼치고 뒤에서 몰래 특공대를 올려보낼 수도 있다. 투석기로 돌덩이를 쏘아올려 성벽을 박살내거나 병든 소를 날려보내서 질병을 퍼뜨릴 수 있다. 너무 튼튼한 성이라 공격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궁탑을 가져와서 미리 경계병에게 양념을 치는 전략도 가능하다. 성벽을 오르내릴 수 있는 '닌자'도 공성병기라고 볼 수 있다. 경계가 허술한 성벽에 올라 몰래 성문을 열 수 있고, 개별전투에 강하기 때문에 경계병 수가 적다면 순식간에 제압한다.

 

공성병기의 독주를 막기 위한 수비시설도 준비되어 있다. 성벽, 감시탑, 해자, 끓는 기름, 함정, 투견 등이 있다. 감시탑만 해도 종류가 여러가지다. 성문도 외관뿐만 아니라 기능까지 고려해서 선택할 수 있다. 종류도 신경써야 하지만 배치도 신경써야 한다.  이것저것 짓다보면 자신의 성이 뚝딱 완성된다. 생각보다 인터페이스가 어렵지 않아서 몇번 클릭해보고 모양만 살펴보면 원하는 자신만의 요새를 손쉽게 건설할 수 있다. 물론 벽돌 자원이 부족한 초반에는 감시탑만 덩그라니 세워두고 궁수만 몇몇 배치시키고 자신의 영토라 외치는 초라한 모습일 것이다.

 

전쟁콘텐츠가 스케일을 담당한다면 내정은 아기자기함을 담당한다. 내정은 크게 나누면 세금, 행복도, 생산 관리다. 이 중 생산관리가 꽤나 재밌다. 앞에서 계속 생산 프로세스에 대해 언급했는데 바로 이 부분이다. 예를 들어 갑옷을 입지 않아 방어력은 낮지만 그만큼 민첩하고 공격력도 막강한 철퇴병을 만들기 위한 과정은 이렇다. 광부가 철광석을 캐고 철괴로 만들어 창고에 쌓아둔다. 외다리 대장장이 영감이 철광석을 가지고 열심히 철퇴를 만들고 병기고에 납품한다. 모닥불가에 모여있는 잉여인력에게 철퇴를 쥐어주면 철퇴병이 완성된다. 내친 김에 빵 생산과정도 살펴보자. 농사꾼이 밀을 재배한다. 수확한 밀을 창고에 쌓아두면 제분소에서 밀을 가져다가 밀가루로 만든다. 밀가루는 다시 제빵사를 거쳐 빵이 된다. 과정 하나하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재미가 쏠쏠하다. 내 영주민이 꼬물꼬물 움직이면서 1차자원을 2차에서 완성품으로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진짜 영주가 된 기분이다.

 

단순히 자원창의 숫자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원이 움직이기 때문에 동선을 고려해야 한다. 요새의 위치, 창고의 위치, 생산시설의 위치 등 동선을 고려한 도시 설계가 중요하다. 이것은 사실 뉴비에게는 버거운 작업이다. 일단 지어봐야 어떤 녀석이 어느정도 속도로 움직이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험이 쌓이기 전에는 어떤 시설을 어디와 가깝게 지어야할지 너무 고민하기 보다는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지으면 된다. 이 부분에 튜토리얼이나 간단한 팁이 없다는게 조금 아쉽다. 성벽도 너무 튼튼하게만 짓다보면 생산에 방해가 되고, 생산을 너무 고려해서 성을 지으면 공격에 취약해진다. 생산과 국방의 균형을 잘 맞추기 위해선 몇 번의 반복 플레이가 필요하다.

 

세금과 행복도 관리의 인터페이스는 쉽지만 목표 달성은 쉽지 않다. 이런 류의 게임을 즐겨본 게이머라면 너무도 쉽게 파악 가능하게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다. 식량 배급을 늘리거나 술을 제공하면 행복도와 영주민의 수가 증가하여 세수가 늘어나지만 그만큼 식량 소비가 많아진다. 세금을 늘리면 행복도는 떨어지고 그만큼 영주민 관리도 어려워지면서 생산에 빨간 불이 들어오게 된다. 상황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만큼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내고 유지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결국 지의 생산력이 가장 중요하므로 여기에 집중하는 것을 추천한다.

 

스트롱홀드가 10점 만점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가성비가 뛰어난 게임이지만 단점이 눈에 띈다. 마이크로보다는 매크로 컨트롤이 중요하다보니 개별 유닛 AI가 딸린 편이다. 병력을 큰 뭉텅이로 나누고 여러 방향에서 공격하도록 컨트롤을 따로 하지 않으면 우왕좌왕하는 병사들을 볼 수 있다. 상대의 화살 샤워에 병사들이 눈녹듯 사라지는 장면은 보너스다.

 

모든 게임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실력이 어느정도 쌓이게 되면 AI를 상대로는 더 이상 흥미를 느끼기 어렵다. 고전게임이니만큼 추가적인 AI개선이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 멀티플레이도 활성화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문명만큼 몇백시간 플레이하기는 어렵다.

 

맵크기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를 늘릴 경우 규모가 고만고만해지는 단점이 있다. 전쟁규모가 재미인 게임에서 맵크기로 인해 스케일이 작아진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단축키 없이 마우스로만 진행해야 하는 점도 요즘 게이머에게는 익숙치 않은 컨트롤 환경일 수 있다. 불편하기까지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인터페이스가 직관적이니 만큼 아주 힘들정도는 아니다.

 

가끔 이것저것 고민하지 않고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서 전쟁놀이를 해보고 싶을 때 플레이하면 딱 좋은 게임이다. 기본적인 플레이타임 대략 20시간정도는 보장한다. 인기에 힘입어 후속작이 출시되긴 했지만 기대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후속 시리즈는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스트롱홀드는 크루세이더만 믿고가길 바란다. 혹시 개발사가 바뀌어서 또 다른 후속작이 나온다면 해상 콘텐츠, 시나리오 추가, 세력별 특징 추가, 맵 확장, AI향상이 이뤄지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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