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을 피할 수 없는 사람은 건배사 강요도 피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모든 노동에는 요령과 절차가 있듯 먹노동인 회식에서도 요령과 지켜야할 절차가 있다. 안그래도 게임도 못하고 끌려와서 열받는데 고기굽다가 한소리 듣고, 술빼다가 한소리 듣고, 어설픈 건배사로 분위기까지 보내버렸다고 한소리 들으면 회식상을 샷건쳐버릴지도 모른다.



자기가 그 자리에서 높은 축에 속한다면야 건배사로 뭐라고 하건 호응이 뒤따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 회식자리에서 상사의 인기는 슈퍼스타 뺨을 후려치기 때문에 무얼하건 대중은 열광한다. 슈퍼스타가 아닌 사람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제대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의 싸늘한 눈초리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길지 않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건배사를 봤는데 제대로 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지루한 건배사를 하게 되면 본인도 민망할 뿐만 아니라 팔아프게 잔을 들고 건배를 기다리는 주변 사람과 자신에게 건배사를 시킨 누군가도 굉장히 민망해진다. 

 


지금까지 본 망하는 건배사는 두가지 유형이다.



뜻만 좋고 재미는 없고 주절주절 설명이 필요한 건배사


인터넷에서 건배사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대표적인 건배사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대부분 세글자로 된 단어이며(왜인지는 모른다) 각각의 글자는 좋은 뜻이 담긴 문장 속 단어의 첫글자를 따온 것이다.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해, 당나귀!' 이런 식이다. 다들 건배하겠다고 잔은 들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 단어에 내포된 뜻풀이를 주저리주저리 해줘야 한다. 그렇게 고생한들 의미도 사람들에게 딱히 와닿지도 않는다. 현재 상황에 맞춰 건배사를 준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면 알겠지만 이런 좋은 말들은 글로 봤을 때와 육성으로 들었을 때 받아들이는 사람의 민망함 정도가 다르다. 쉽게 호응이 어렵다.


선창 후창 구호가 없는 건배사


건배사를 하라고 했더니 진짜 건배사(辭 : 말씀 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겸연쩍고 싱거운 웃음을 섞으며 많은 분들께 감사를 올리고 참석자들의 건강을 기원하다 흐지부지 끝나는 그런 건배사 역시 상사에게 양보하는 것이 좋다. 짧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할지 본인 스스로도 몰라 중언부언 말이 길어지기 시작하면 상황은 더 나빠질 수 밖에 없다.


외쳐! 건배!


건배사의 기본은 망하는 유형 반대로만 하면 된다. 설명은 짧고 간결하게, 구호는 선창후창 한다. 구호는 문장보다는 단어 조합이 참석자 모두 호응해서 외치기 더 편하다.


건배사를 많이 시키는 분위기가 아니고 어쩌다 한번하는 경우라면 그냥 간단하게 해서 재빨리 차례를 넘겨도 무방하다. 어차피 건배사를 시킨 사람도 참석자들에게 술을 먹이는게 목적이지 진짜 건배사를 듣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건배의 뜻을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건! 이라고 외치면 배!라고 외치며 잔을 비워주십시오. 건! 배!'



'우리팀, 최고' , '부장님, 감사' , '끝까지, 간다' 등등 식상할 수도 있지만 식상함을 느끼는 시간은 최대한 줄이고 목청만 높인다면 그럭저럭 대충 성공적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다. 줄이고 더 줄여서 단순무식하게 '기합넣고 가겠습니다. 악!하면, 악! 해주시길바랍니다'만 해도 먹힌다. 기왕이면 미리 몇가지 준비해두는 것이 본인 마음도 편할 것이다.


술자리가 점차 처지기 시작할 때 분위기 전환을 위해 본인이 노력하기 보다는 부하직원에 기대려는 상사가 있다. 그런 경우 여지없이 구석에 짱박혀 있는 이의 이름이 불린다. 식상한 것을 또 할 수는 없으니 이번에는 좀 비틀어 본다. 어차피 다들 술에 취해 세세히 기억도 못할테니 조금은 대범하게 해도 된다.


'집에 갈 시간입니다. 당신과 나의 귀가를 위하여, 당나귀!'


집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열렬히 호응해준다.


나이 든 사람 중에는 술 남기고 집에 돌아가면 큰일나는 줄 아는 분들이 많다. 술을 다 비워야 집에도 빨리 돌아갈 수 있다. 나 혼자 다 마실 수는 없으니 모두가 힘을 합칠 수 있도록 건배사에 힘을 줘도 된다. 술이 남으면 결국 누구 입에 들어가게 될지 생각하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적극적으로 공세를 취한다.


'제가 좋아? 라고 물어보면 기분 좋으신 분은 좋아!라고 외치며 건배하시고 기분 나쁘신 분은 좋아!라고 외치며 건배해주시기 바랍니다. 좋아? 좋아!'



여태까지 써먹었던 건배사를 줄줄이 늘어놔야 봐야 자리마다 상황마다 분위기와 자신의 포지션이 다 제각각이라 큰 도움은 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부디 이번 포스팅에서 다룬 간단한 규칙만이라도 원활한 회식 종료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최대한 멀쩡한 정신으로 일찍 귀가해서 음주게임, 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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