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A5 리뷰 (너는 얼마지)
새로울 것 없는 경험
제목부터 벌써 느낌이 팍팍 온다. 아직 구매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지극히 개인적인 이 리뷰는 참조만 하길 바란다.
GTA라는 타이틀에는 뭔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탑뷰 형식의 GTA1,2 를 처음 플레이 했을 때의 충격은 대단했다. 말도 안되는 자유도(?), 불량한 스토리, 끊임없이 행동하게 만드는 자극은 이 시리즈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GTA3로 넘어오면서 그래픽은 3D로 발전했고 플레이어를 말그대로 칙칙한 리버티시티로 녹아들게 했다. 향상된 그래픽, 여전히 매력적인 이야기, 짜릿한 미션, '역시 GTA!' 를 외치며 엄지를 치켜올리기 바빴다. 이후 출시된 바이스시티, 산안드레아스도 시리즈를 거듭할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GTA4의 '오~ 마이 꺼즌 니꼬!'부터 좀 고개를 갸웃했던 것 같다. 나름 스토리에 분기도 도입하고 게임 요소요소에 양념도 전작에 비해 더 많이 친 것 같은데 굉장한 맛은 나오지 못했다. 그 이후 중간중간 계속 나온 확장팩은 플레이 하지 않다가 GTA5가 출시된다고 해서 굉장히 기대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출시 후 허겁지겁 구입해서 플레이한 GTA5에 실망을 느꼈다. 타이틀 고유의 포스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비슷한 장르지만 내용은 완전히 약빤 B급 스멜의 세인츠로우가 차라리 더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물론 GTA5가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고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전작의 힘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 GTA6는 어찌될까, 이 수준으로 나온다면 게이머에게나 개발사에게나 실망스러울 것이다.
방대한 맵, 플레이 볼륨, 매력적인 스토리, 준수한 그래픽 등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 게임은 대작이고 명작이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팬심에서 보자면 실망스러운 부분이 보인다. 똥볼 한 번 차면 욕을 바가지로 들어 먹는 메시나 호날두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엄청난 명성에는 그에 맞는 엄격한 잣대도 따라 오게 된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특이하게 주인공이 3명이다. 플레이어는 미션수행 중을 제외하고는 언제든지 원하는 캐릭터를 골라 플레이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컨트롤하지 않는 캐릭터는 그 동안 각자의 생활을 영위한다. 그래서 플레이어가 해당 캐릭터를 선택하면 잠시나마 그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가끔 당황스러운 상황 한복판에 떨궈진 캐릭터의 우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선한 시도지만 한계도 분명히 보인다.
게임 진행이 끊기는 느낌과 플레이 볼륨을 증가시키지 못한 점은 굳이 이런 시스템을 채용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차라리 3명의 주인공을 두되 한 명의 주인공으로 쭉 플레이하게 만들었다면 각자의 관점으로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는 매력이 더 부각되었을 것이다. 추가로 엔딩을 최소 세 번은 봐야했으니 플레이 볼륨도 크게 증가했을 것이다. 볼륨을 채울 아이디어와 개발기간이 부족했기 때문인지 중간에 절충해버린 느낌이 든다.
게임 극 초반에는 주인공들의 메인스토리 릴레이가 끊기지 않고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반부터는 거슬리기 시작한다. 플레이어는 이 캐릭터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데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고 메인 미션의 바통이 다음 캐릭터로 넘어간다. 개운치 못한 느낌을 뒤로하고 다시 집중해서 플레이하지만 역시나 어느 순간 또 다른 캐릭터에게 바통이 넘어간다. 맛있게 먹던 음식을 누군가 갑자기 확 가져가버린 듯한 불쾌함이 남는다.
세명 주인공 개성이 확실한 점은 높이 평가한다. 성격은 물론 거기에 따른 개별 스토리도 서로 구별된다. 트레버는 의리는 좀 아는 것 같지만 정신이 나간 살인마다. 닥치는대로 다 죽여버리는데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캐릭터도 트레버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스토리도 대부분 주변을 박살내고 많은 이를 죽이는 내용이다. 마이클은 범죄자인 것만 빼면 우리네 아버지 모습과 비슷하다. 가족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다. 자녀부터 마누라까지 한시도 자기를 가만두질 않는다. 가족 뒤치닥거리 하기 바쁘다. 프랭클린은 동네 불량배인데 다른 두 주인공을 만나면서 점점 거물로 성장해 가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특수능력도 개성에 맞게 각자 다르다. 트레버는 분노하면서 파워가 강해지고, 마이클은 전투중 슬로우타임, 프랭클린은 운전중 슬로우타임이 가능해진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잘 준비했는데 게임 설계가 충분히 이들을 받쳐주질 못해 아쉽다.
타이틀에서도 드러나듯이 다양한 종류의 탈 것도 큰 자랑거리다. 시리즈를 거듭할 때마다 육해공을 아우르는 탈 것은 플레이어에게 더 큰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현실에서는 엄두도 못낼 스포츠카를 훔치고 박살내고 도로를 질주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탱크를 타고 도시도 박살 낸다. 전투기도 타고 보트도 타고 버스도 몰고 원하는 탈 것은 뭐든 내키는대로 훔쳐서 몰아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걸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다. 너무 이 시리즈에 익숙해져있던 탓일까, 다양한 탈 것도 더 이상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은 점점 늘어나는데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뻔하고 또 이미 너무 많이 했다. 장난감 삽으로 놀이터 바닥을 파는 것도 처음에야 재밌지 삽 모양만 바뀌고 계속 땅만 파야 한다면 싫증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 차량을 가지고 이것저것 소소한 아르바이트는 가능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게이머가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해서 뭔가 새로운 놀이를 생각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콘텐츠를 생각해내야 하는 것은 결국 개발사 몫이다.
탈 것 관련해서 아르바이트 포함 여러 콘텐츠가 추가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뭔가 완성되지 않은 느낌이 든다. 현금차량 탈취도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두번 해보고나면 흥미가 사그라든다. 전투기로 도시를 위협한다거나 경찰차로 음모를 꾸민다거나, 코스튬과 결합해서 게임세계에서 더 많은 재미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다. 탈 것의 위상이 이동 수단의 범주를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시도는 재미를 막 들일 때쯤 끝나버린다.
주식투자 콘텐츠는 또 어떤가, 역시 크게 인상깊지 않다. 주식투자는 깊게 다루자면 끝도 없고, 간단히 하면 그 콘텐츠를 채용한 의미가 없어진다. 우려했던대로 주식 콘텐츠는 게임을 겉돈다. 평소 주가 움직임은 랜덤이기 때문에 '투자'의 의미를 찾기 힘들다. 다만 미션을 통해 특정회사에 이득이나 손해를 끼치면서 주가를 조작할 수 있다. 미션 수행 전 주식을 사두면 큰 돈을 벌 수 있다. 그냥 주식 관련 사이드퀘스트를 마련하거나 스토리 진행 중 하나의 에피소드로 준비했어도 충분했을 것 같다. 이것 역시 뭔가 더 준비한게 있었던 것 같은데 미처 완성시키지 못하고 급히 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부동산도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캐릭터의 개인적 용무 (옷 갈아 입기, 이동수단 보관 등)가 가능한 집과 각종 이익을 가져다 주는 부동산을 구입할 수 있다. 수익형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면 꾸준히 수익을 안겨준다. 종류는 여러가지 있고 지역과 용도에 따라 가격차이가 있다. 부동산은 스토리 진행에 따라 자연스럽게 획득하기도 하고 돈을 모아 직접 구매하기도 한다. 이모하고 구질구질한 곳에서 살던 프랭클린이 멋진 저택으로 이사가는 걸 보면 왠지 내가 더 뿌듯해진다.
트집잡기 아니야?
GTA5에는 여기서 언급한 것 외에도 정말 다양한 콘텐츠와 새로운 시도가 보인다. 그럼에도 계속 깐다. 그래서 트집잡기라는 오해를 받을지 모르겠다. 팬심도 유분수지 말만 팬심이고 까는데 급급하다. 길게 썼지만 불만은 사실 딱 두가지다. 하나는 콘텐츠의 깊이가 부족하고 미완성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는 것이다. 이 점은 앞에서 충분히 다루었다. 두번째는 게임이 쉽다. 이 게임이 가지는 많은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 게임엔 적절한 어려움이 빠져있다. 그러니 뭘 추가하든 구현해내든 관계없이 흥미가 점점 떨어진다. 개성 넘치는 주인공이 3명있다. 누굴 플레이 하든 게임이 너무 쉽다. 코에이판 삼국지 게임에는 중원의 패왕 조조와 덕왕 엄백호가 등장한다. 같은 군주지만 천하통일로의 여정은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차이가 재미를 만들어 낸다. 난이도 조절은 게임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탈 것이 많다. 언제 어디서든 스포츠카를 훔칠 수 있다. 탱크도 훔칠 수 있다. 뭐든 쉽게 플레이어 손에 들어온다. 부서지면 그 뿐 다른걸 또 훔친다. 길가에 세워진 차는 그냥 열면 된다. 달리는 차는 길을 막고 운전자를 끄집어 낸다. 그것도 싫으면 그냥 백주대낮에 총을 갈긴다. 경찰이 쫓아온다. 도망가서 시간 죽이거나 도색하면 해결되는 문제일 뿐이다. 아니 그것도 싫으면 그냥 죽어버리면 된다. 곧 병원에서 다시 살아난다. 아주 푼돈만 들이면 된다. 뭔가 게임이 너무 내 뜻대로 돼서 흥미가 줄어든다.
무기 종류가 많다. 이것저것 시도해본다. 방어구도 갖춰본다. 나쁜놈(?)들을 쏴죽인다. 어떤 무기를 쓰건 혼자서 4~5명은 우습게 처리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혼자서 도시를 공포에 빠트리는 것도 가능하다. 굳이 머리를 써가며 여러 무기를 활용할 필요가 없다. 그냥 마음 내키는 녀석을 막 쏘다보면 적은 알아서 박살난다. 만에 하나 죽으면 어떤가, 그냥 다시 살아나면 된다.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우선, 돈은 스토리 진행만으로도 떼돈 벌 수 있다. 그리고 딱히 돈 쓸 이유가 없다. 돈을 소비하는 콘텐츠라고 해봐야 무기, 코스튬, 부동산 정도인데 플레이어의 욕구를 자극하기엔 역부족이다. 웬만한 것은 다 훔칠 수 있다. 없으면 없는대로 아쉬울 것은 없다. 여전히 주인공은 강하고 뭐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딱히 돈의 효용이 없으니 새 콘텐츠가 가져다주는 즐거움도 일시적이다. 주식투자건, 부동산 관리건, 현금 차량 탈취건 초반에 반짝 재밌다가 점점 의미없는 노가다로 변질된다. 알아서 몇십만 달러씩 돈이 펑펑 들어오는데 택시기사 노릇이나 하며 푼돈이나 벌고 있을 필요는 없다.
스토리가 좋고 다양한 악당도 나오고 조력자도 나온다. 캐릭터 매력은 어디에서 오는지 잠시 생각해본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아무리 매력적인 캐릭터라 해도 만약 상대가 엑스맨의 자비에 박사라면 그 엄청난 힘 앞에 조커의 매력은 크게 반감될 수 밖에 없다. 이 게임의 악당과 조력자도 마찬가지다. 하나하나 떼놓고 보면 매력적이지만 엄청난 주인공 힘 앞에 그들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그나마 마이클이야 지킬 가족이 있으니 약점이 있다 하겠지만 나머지 캐릭터는 잘 모르겠다. 평소 경찰 한 둘 우습지 않게 죽이고도 별탈없는 주인공이 왜 갑자기 현직 FIB(?)인 악당에게는 맥을 못추는지 모르겠다. 여차하면 죽이고 다시 도망가면 그뿐인데 게임스토리 진행을 위해 어울리지 않은 행동을 한다. 조력자의 도움도 별 필요없어 보인다. 마음대로 행동했다간 시스템적으로 임무실패가 뜨기 때문에 그렇지 조력자 없이 무슨 일이든 맘대로 행동해서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다.
스토리가 가지는 힘도 함께 약해진다. 스토리의 주인공은 돈 때문에 부자한테 고개숙이고 권력 앞에 약해진다. 평소 플레이어가 컨트롤하는 주인공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부자라고 주인공 앞에서 깝죽대다간 타고있던 차는 뺏기고 흠씬 두들겨 맞는다. 또한 스토리에서만 이를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 이미 주인공은 그 부자를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돈을 가지고 있다. 권력자는 또 어떤가, 그냥 가서 총을 쏘건 방망이를 휘두르건 혼쭐 내주고 경비행기 하나 훔쳐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 해결될 일이다. 하지만 게임 시스템은 자꾸 주인공에게 스토리 '설정'에 따르도록 강요한다.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단순히 생각해보면 게임 난이도를 올리면 된다. 그러면 플레이어도 수긍할 수 있다. 방법은 어떻게 해야할까, 돈이 가지는 의미를 강화하면 된다. 엄청난 노력끝에 부자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게 되고 더 이상 그 놈말을 안들어도 됐을 때 쾌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주식 대박이 터지면 즐거워야 한다. 하루하루 푼돈을 벌다 범죄로 큰 돈을 벌었을 때 묘한 흥분이 느껴져야 한다. 한 번 죽으면 엄청난 돈이 사라져야 한다. 파산해서 그동안 끌어모은 부동산도 사라지는 아픔도 겪어봐야 한다.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정상' 훔치는 것은 '비정상'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게임 타이틀에 너무 집착해서인지 지금은 너무 비정상으로 기울어져 있다. 훔치는게 정상인데 훔치는게 재밌을리가 없다. 자동차도 사야하고 무기도 사야하고 옷도 사야하고 수익은 쥐꼬리여야 게임이 주는 일탈의 경험이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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