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이 어쩌구 저쩌구(2/2)
누군가 꿈에서 써주면 좋겠다
자소서? 자소설? 뻥 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자소서에는 말그대로 자기 소개가 들어가야 한다. 문제는 무엇을 써야할지 막막하다. 동기를 쓰라고 하는데 그냥 안정적인 직장 잡아서 별 걱정없이 살면서 게임라이프를 즐기고 싶을 뿐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포부도 없다. 평범한 사람이라 자부해온 나에게 눈에 띄는 장점이나 단점따위 있을리도 없다. 그래서 많은 취준생이 오늘도 소설을 쓴다.
자소설은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다. 타고난 거짓말쟁이라면 모를까 대부분 긴장한 상태에서 자소설 관련 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하게 마련이다. 면접은 모르겠고 일단 서류만이라도 통과하고 보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자소설은 디테일이 부족해서 인사담당자에게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지금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구직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자소서를 쓰는 일이었다. 안쓰던 두뇌를 풀가동해가면서 글을 쓰는 일 자체가 가뜩이나 글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나에게 쥐약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자소서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렵고 귀찮고 막막한 일은 후딱후딱 해치워버리고 남은 시간은 모두 편하게 게임을 즐기면 좋겠다. 회사마다 자소서에 요구하는 문항이 다르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나오는 문항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자.
동기를 쓸 때는 뻥을 치자
앞서 뻥을 치지 말라는 얘기는 자소서의 기본 방향에 대한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기를 쓸 때는 그럴싸한 내용을 지어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잘 지어내야 한다. 서류전형의 당락을 결정짓는 핵심 문항이 동기를 묻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써야 한다고 '저는 매달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면서 게임라이프를 즐기고 싶어 귀사에 지원하였습니다.'라고 써서는 안된다.
동기를 어떻게 써야할 지 알아보기 전에 먼저 흔히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 알아보겠다. 앞서 말했다시피 별다른 동기가 없다보니 나의 동기보다는 회사의 장점을 나열하게 된다. '당신네 회사가 이렇게 저렇게 좋으니까 나도 그 일원이 되고 싶습니다.' 와 같은 동기를 글자수만 맞춰서 써버린다. 이보다 더 심한 내용을 실제로 본 적이 있는데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XX도로를 타고가다 기름이 떨어져서 마음이 불안하던 차에 OO정유의 간판이 보여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든든한 ㅇㅇ정유의 일원이 되어….' 이렇게 심한 경우는 많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 한 두번쯤은 너무 막막해서 회사 규모가 얼마나 큰지, 얼마나 수익성이 좋은지,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이뤘는지에 대해 쓰게 되는데 이는 금쪽같은 자소서 공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업종과 직무를 기준으로 동기를 지어내보면 생각보다 쉽게 쓸 수 있다. 자동차가 좋아서 관련 회사에 지원했는데 수많은 자동차관련 회사 중 이 회사를 쓴 동기는 정말로 지어내기 힘들다. 붙여줄 것 같아서? 연봉이 쎄서? 만만해보여서? 뭐라고 쓸 것인가. 고민이 깊어지기 때문에 특정 회사 관련 동기 보다는 먼저 해당 업계에 있는 어느 회사의 직무에 적용가능한 동기를 지어내는 일부터 시작한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자신과 전혀 연이 없는(주로 전공) 업계라고 한다면
'대학 동기들과 다른 길을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업계에서 성과를 이룬다면 주변의 반응이 어떨지 기대되고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금융업에 지원하는 경우 '국내 1등 XX은행, 세계로 뻗어나가는 XX은행'이라고 시작하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자기 자신이 원래부터 주변 사람과 재테크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쪽 분야에서 근무하게 되면 사람과 교류할 때 즐거움이 배가 될 것 같다는 식으로 자신의 소소한 이야기인듯한 내용으로 지어내는 것이 더 좋다.
어떤 회사의 영업 직무에 지원했다고 한다면 특정회사 부분은 옅게 처리하고 직무에 집중해보길 바란다.
'물건을 사고팔고 가치를 주고 받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교환물의 가치는 그대로인데 거래를 함으로써 당사자들이 느끼는 가치는 더 커지는 과정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
'흔히들 영업을 을이라고 생각하는데 경험해본 바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제대로 된 가치를 정당하게 거래하는 회사의 근간인 직무라고 생각한다. XX회사에서라면 자부심을 가지고 이해관계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
동기를 이렇게 쓸 경우 질문의 원래 목적과는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다. 먼저 위 예시가 회사칭찬과 장점만을 나열하는 내용보다는 훨씬 질문의 목적에 부합한다. 또한 인사담당자에게 필터링 될 가능성이 더 적다. 무슨 말인가 하면 1등기업, 세계로 뻗어나가는 등등의 키워드는 이미 인사담당자 필터링 중 '식상함' 카테고리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동기에 이런 내용이 들어가면 감점을 받고 걸러질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저런 키워드를 피해갈 수 있다. 특정 회사에 대한 내용이 없어서 불안해 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인사담당자는 너무 많은 자소서를 읽었기 때문에 이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그냥 다 우리 회사 이야기겠거니 생각한다. 그래도 정 불안하다면 마지막 부분에 회사관련 내용을 살짝 추가한다면 그럴싸한 'XX회사'에 지원한 동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참신함과 스케일에 너무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동기를 쓰라고 했더니 새롭고 거대한 것을 찾아 자소설이 SF소설로 변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동기란 회사에게 '내가 아무리 야근을 많이 하고, 연봉이 적고, 상사가 이상하고, 회사에 시스템이 하나도 없이 굴러가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이 회사에 뿌리를 내리고 평생 충성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을 소소하게(?) 풀어내는 일종의 서약이다. 흔히들 자소서를 연애편지로 생각하라고 하는데 얼추 맞는 얘기다. 상대방이 의심의 눈초리로 진심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있을 때 떠듬떠듬 자기의 심정을 풀어나가야 한다. 무턱대고 상대방의 장점만 칭찬하거나, 너무 허황된 얘기나 기상천외한 취향을 보인다면 딱지 맞지 않겠는가. 상대방 보다는 스스로에게 집중하면서 나의 충성서약이 나름 근거가 있음을 어필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래, 우리회사 1등회사인거 안다. 이렇게 인기많은 회사인데 굳이 당신을 뽑아야 하는 이유가 뭐지. ' ,'회사 겉만 보고 들어왔다가 금방 도망가는 사람 많이 봤다. 당신도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지' 라는 의심에 무너질 수 밖에 없다.
팁을 하나 덧붙이자면 다른 회사 경력이 조금 있는 지원자라면 지원동기대신 퇴사동기를 써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퇴사동기가 지원동기에 비하면 훨씬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쓰기 좋은데다가 덤으로 면접 시 반드시 나오게 마련인 '왜 전 회사를 그만두고 우리회사를 지원했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비도 된다. 물론 전 회사 험담을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는 상사가 X같아서 그만둔것이지만 이를 그대로 쓰기보다는 '사회인으로서 귀감이 될만한 많은 분들과 함께 일하며 호흡하고 싶습니다.' 정도로 다룬다. 특히 피해야할 내용으로는 '회사가 어려워서' ,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해서' 다.
지원한 직무와 그 이유를 쓰라고? 멍~
동기를 직무나 업계 위주로 썼더니 다른 문항에서 직무에 지원한 이유를 물어보는 경우 난감하다. 선택지는 세가지다.
1. 이곳은 포기하고 그 시간에 다른 회사 2곳에 지원한다.
2. 머리를 짜내 앞에 동기를 어떤 식으로든 변경한다.
3. 선택한 직무관련 강점을 써버린다.
3번선택지는 자기 나름대로 앞의 지원동기와 직무관련 동기를 구분하는 것이다. 회사 지원동기를 쓸 때는 주로 '~싶다.' '~위해' 라는 표현을 써서 말그대로 이 업계 내지는 직무에 들어가고자 하는 본인의 희망을 다룬다면, 직무관련 문항에서는 자신이 이 직무에서 얼만큼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지 강점 위주로 서술한다. 몇몇 자소서를 보면 '이 분야를 좋아하기 때문에 들어가서 배우고자 한다'는 식으로 쓰는데 이보다는 '이 직무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둘 자신이 있다.' 는 내용이 더 설득력 있다. 만약 강점이 없다면 어떻게든 지어내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장점은 평범함이고 단점은 평범함입니다.
장/단점은 평범한 것을 쓰는 것이 좋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장점은 자기자랑이라서 보기 싫고 단점은 특이한 걸 쓰면 또xx 취급 받을 수도 있다. 대개 상대방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 맞춰 쓰면 가점도 감점도 받지 않고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문항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란 보통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를 보는 느낌과 일치한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뭐 알지도 못하는 거창한 조직에서 리더십을 발휘했다느니, 엄청난 고난이 있었지만 장점을 십분 발휘해서 돌파해냈다느니 이런저런 단점이 있는데 피나는 노력(이라쓰고 수련)끝에 극복해내서 나는 완전체가 됐다느니 하는 식으로 쓰게 된다면 자소서 전체에 대한 신뢰도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장/단점을 쓰는 문항 관련해서 흔히 볼 수 있는 팁 두가지가 있다.
- 단점은 극복 가능한 것으로 써라.
- 장점같은 단점을 써라.
이 팁이 끼친 영향 상당하다. 아래와 같은 글을 수백개씩 보는 사람은 헛웃음이 나올지 안나올지는 스스로 판단한다.
'시간을 너무 칼같이 지켜서 탈입니다. 앞으로는 15분전까지만 나오겠습니다.', '한 번 일에 집중하면 밤을 새서라도 끝냅니다. 앞으로는 건강도 생각하겠습니다.', '리더십이 있어 사람을 잘 이끌다 보니 너무 자주 앞장서게 됩니다. 앞으로는 주변을 지원하는 일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장/단점 문항은 앞서말했다시피 자소서의 신뢰도(지원자의 진지함까지 포함)를 파악하는 문항이기 때문에 무리하게 점수를 따려고 하기 보다는 방향을 살짝 틀어서 인사담당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갈 수 있게만 한다.
이를 위해 단점을 쓰는 문항에는 서툰 점을 쓴다. 단점이나 서툰 점이나 비슷한 의미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극복가능한 단점' 보다는 덜 거창하고 공감을 얻어내기도 쉽다. 같은 내용이어도 어조에 따라 단점이 될 수도 있고 서툰 점이 될 수도 있다.
'디테일을 잘 챙기지 못하는 것이 저의 단점입니다.'
'아직까지는 디테일을 챙기는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낍니다.' .
앞의 문장이 좀 더 치명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나 사례도 거창한 내용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또한 '~이 단점이다'는 식으로 쓰게 되면 쓸 수 있는 내용이 덜 치명적(?)인 내용 즉 장점같은 단점으로만 한정되기 때문에 머리를 짜내기 더 힘들게 된다. 서툰 점으로 표현하게 되면 뒤에 따라오는 개선 사례나 깨달은 점도 담담하게 서술하기 좋다.
'대학과제에서 조장으로서 큰 줄기를 잡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겨 디테일 부분은 조원에게만 맡기고 미처 챙겨보지 못한 적이 있다. 다행히 기한 내 제출해서 점수는 받을 수 있었지만 발표 당일 틀린 데이터를 지적받아 크게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 이 뒤부터는 깨달은 점이나 다시 한 번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해 간단히 다루면 된다. 글이 담담해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소재도 많아 진다. 디테일만 너무 써먹었다 싶으면 이번에는 반대로 디테일은 자신있지만 일의 큰 맥락을 잡는게 아직까지는 힘들다는 식으로 쓸 수도 있다.
서툰 점은 아직 '신입'이라서 가지고 있는 문제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실제 '단점'을 쓸 때보다 덜 거북하고 내용도 자연스러워진다. 이를 읽는 인사담당자도 덜 불편하다. 어차피 신입은 언젠가 고참이 되기 때문에 거창한 극복 사례도 필요없다. 제한된 글자 수 안에 거창한 이야기를 우겨넣다보면 반드시 실수한다. 간단히 서툰 점을 쓴다.
희망연봉은 쓰면 쓰는대로 주는 것인가
대기업 공채에서는 많이 없어졌지만 아직까지도 희망연봉을 쓰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희망연봉은 경력직 채용 시에나 필요한 항목이다. 기껏 모셔왔는데 대우가 맞지않아 도망가버리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희망연봉을 미리 파악함으로써 이 사람의 기대값과 회사가 해줄 수 있는 대우를 조율해보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아직 시장가격(…)이 매겨지지 않은 신입의 경우에는 당연히 입사한 첫회사의 연봉이 그대로 자신의 몸값이 된다. 어제까지 초봉2천만원 회사 내정자였다가 오늘 4천만원회사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면 몸값이 껑충뛰는 것이다. 따라서 몸값의 기준점도 없는 상황에서 희망연봉을 물어보는 것은 전혀 의미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묻는 이유는 그들 말로는 몇가지 있다.
첫째는 자기들이 생각할 때 말도 안되는 지원자를 걸러내기 위함이다. 아직 본격적인 취업전선에 뛰어들지 않을 때에는 연봉에 대한 환상이 있게 마련이다. 초봉 5천, 6천을 자신하는 경우도 있다. 마치 고등학교 입학 전에는 못해도(?) 연고대는 간다고 자신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들 열정페이를 묵묵히 받아들일 만큼 깎여나가게 된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 와중에도 꼿꼿히 자신의 기준을 지키며 자신의 희망연봉을 적어내는 용자가 있는데 회사는 이들을 걸러내려고 한다.
다음은 지원한 업계와 회사에 대한 관심도를 측정하기 위함이다. 얼토당토않은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회사 쪽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입사하고 내 옆사람이 얼마 받는지도 잘 모르는데 외부인이 그 회사 연봉이 얼마일지 어떻게 파악하고 그 숫자를 딱 맞게 희망연봉에 쓰라는 말인지, 이게 관심만 가지고 해결되는 문제인지는 의문이다. 어떻든 자기들이 생각하는 연봉보다 낮게 적으면 낮게 적은대로 '우리 회사를 무시하는거냐, 이 업계가 어떤 곳인지 정말 파악이 안되어 있구만', 높게 쓰면 높게 쓴대로 '우리 업계 지원하면서 이 정도 무른 각오가지고 되겠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쓸데없이 눈만 높은 친구로구만' 식으로 지원자를 손쉽게 판단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그렇다면 희망연봉은 얼마를 기재해야 정답일까. 회사마다 업계마다 정답이 백만원 단위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점쟁이로 나설게 아니라면 이 쪽은 과감히 포기한다.
'회사 내규에 따름'
감점도 가점도 받지 않는 방식으로 피해나가는 것을 추천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꼭, 꼭, 반드시 액수를 기입해달라고하는 회사도 있다. 이 경우에는 운에 맡기고 혹시 면접에 가게 됐을 때를 대비해서 양쪽 버전으로 답을 준비해둔다. 내 딴에는 희망연봉을 적게 썼는데도 막상 면접에 갔더니 'XX씨가 이정도 값어치를 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세요?'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글자수는 얼마나 채워야 할까
문항 마다 있는 글자 수 제한이 괜히 신경 쓰인다. 최대 글자수를 제한하는 것이지만 왠지 최소 이 정도까지 써야할 것만 같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서있는 상황에서 글자수가 고민될 수 밖에 없다. 글자수가 넘치는 경우야 사소한 내용부터 차례로 쳐나가다보면 완성되므로 고민할 것이 많지 않다. 문제는 글자수가 모자라는 경우다. 좋은 글로 글자수를 채울 수 있다면 좋지만 중언부언하는 식으로 글자수만 채워넣는 것은 삼간다. 특히 쓸데없는 수식어를 반복해서 추가하는 식으로 글자수를 늘리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문항에서 요구하는 최대 글자수가 2천자를 넘어가는 경우, 만약 자신의 글이 그 절반 정도에서 완성되었다면 거기에서 끝맺는 것이 좋다. 2천자쯤 되면 인사담당자가 이게 1,000자인지 1,200자인지 2000자를 꽉 채웠는지 일일히 세어볼 수 없다. 지원자의 바람처럼 글자수를 기준으로 패기, 열정, 성실함에 점수를 매길 수 없다는 얘기다. 되려 짧은 글은 지쳐있던 인사담당자에게 산뜻한 임팩트를 줄지도 모른다.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중요한 부분을 상세하게, 근거를 제시하면서 쓰는 것이 글자수를 채우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 대개 자소서 문항은 한가지 소재, 하나의 에피소드 정도만 넣으면 꽉 찬다. 그런데 여기에 자투리 공간이 남는다고 혹은 욕심을 내서 무리하게 다른 얘기를 추가하면 공간이 모자라서 기존 완성된 글을 허물 수 밖에 없다. 우겨넣은 두 이야기는 결국 자기만 알아볼 수 있는 굉장히 함축적인 글이 된다. 지원자는 자기 얘기이기 때문에 글에 표현되지 않은 내용도 머리에서 자동으로 부족한 부분이 보충되어 이를 알아채기 어렵다. 타인도 어련히 염두에 두고 내 자소서를 읽어주겠지하고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는데 가뜩이나 글의 홍수에 짜증이 나있는 인사 담당자에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너무 안써진다
이번 포스팅 내용이 길어지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자소서는 정말 쓰기 어렵다. 뭔가 떠오르긴 하는 것 같은데 막상 문항에 우겨넣으려니 막막하다. 심지어 소재조차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럴 때는 과감히 자리에서 일어나 산책을 하거나 낮잠을 늘어지게 자는 것이 좋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뇌는 움직일 때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한다. 걷다보면 갑자기 뭔가 떠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그때 그때 떠오르는 내용을 녹음해두는 것도 방법이다. 인간의 뇌는 잘 때 깨어있을 때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한다고 한다. 위대한 발견이 꿈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실제로 있기 때문에 아주 허황된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분 전환으로 게임한판 하는 것은 그렇게까지 큰 도움은 안되는 것 같다. 결국 뭔가 써내야 끝나는 고민인데 앞의 두가지 선택지와는 달리 게임을 플레이한다고 해서 글감이 나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면접? 설마 내가 떨어지겠어?
100여 곳 이상 지원하고 드디어 2~3곳(문돌이 기준)으로부터 면접에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긴장도 되고 뭘 준비해야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평소 말빨(?) 하나는 자신이 있기에 이미 합격했다는 듯이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건 최종관문을 통과해야 목줄을(!) 걸 수 있다.
가장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면접도 자소서만큼 정성들여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면접에 대해 임기응변이다, 변수가 많다, 돌발상황이 많다고 하면서 준비해봤자 소용없다는 의견도 있는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준비를 해서 예상 밖 상황을 줄여나가야 한다. 평소에는 임기응변으로 잘 넘어갈 상황도 긴장하게 되면 어버버하게 될 뿐이다. 돌발상황이 벌어졌다면 이미 불합격했다고 생각해야 한다. 면접에 들어가기 전 기본준비는 간단하다.
- 자신이 쓴 자소서 내용 완벽히 숙지 및 암기
- 간단한 자기소개 두가지 버전
면접 대부분의 질문은 자소서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면접위원은 뻔히 자소서를 읽으면서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다른 대답이 나오면 갸우뚱할 수 밖에 없다. 면접에 임하기 전 달달 외워서 자연스럽게 말로 나올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두지 않으면 면접관 앞에서 자소설로 멋지게 꾸며놓은 모습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돌발 질문에 대비해서 구글 면접 문항을 참고하거나 갑자기 상식도서를 펼쳐드는 사람이 있는데 자소서 관련 질문에 충실히 답변했다면 그런 돌발 질문이 나올 일도 거의 없거니와(시간도 부족하다) 설혹 대답을 제대로 못했다 하더라도 큰 감점이 아니다. 주변에서 나는 실컷 대답 다 잘했는데 떨어졌다고 한 사람은 대부분 앞서 말한 것과 반대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꼴을 겪지 않기 위해 부모님 또는 여친남친 앞에서 암기한 자소서 내용을 자연스럽게 말하는 연습을 하도록 하고 피드백을 반영한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두개 준비하라고 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준비한거 말고 다른 거 해보라고 시켰을 때를 위한 대비다. 이럴 때는 마치 정말로 그 자리에서 생각해낸 것처럼 자연스럽게 시간을 좀 둔 후에 짧은 두번째 자기소개를 시작하도록 한다.
일단 여기까지가 면접의 당락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이후는 자잘한(?) 부분을 다루겠다.
My name is 철수 킴
영어 면접 했을 때 겁부터 먹는 사람이 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 면접위원 중에 다른 사람 영어를 평가할만한 사람도 없고, 시간도 없다. 특별한 공지가 없는 이상 대부분 회화학원에서 레벨테스트 하는 수준 정도로 외부에 위탁해서 진행한다. 정말로 영어 실력이 출중해야 하는 경우는 자소서부터 영어로 쓰라고 하기도 하고 채용공고 자체를 영어로 쓰기 때문에 애초에 지원할 일이 없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쓸데없이 겁먹고 지원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룹토의, 프레젠테이션, 1분자기소개
세가지의 공통점? 20분이면 15분, 15분이면 10분인 식으로 주어진 시간보다 짧게 해야 한다. 그 이유 첫번째, 긴장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을 좋은 내용으로만 충실하게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이 길어지면 실수도 많아지고 사족도 길어져 따분한 느낌을 준다. 두번째, 어차피 안 듣는다. 여러분이 대학시절 수업시간에 남이 발표하는 것을 메모까지 하면서 들었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여러분 앞에 앉아있는 면접관도 마찬가지다. 내용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 말하는 태도나 인상같은 추상적인 부분에서 의외로 많은 점수가 왔다갔다 한다. 주어진 시간을 다 채워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짧고 산뜻하게 마친다. 내 경우 1분자기소개 준비해오라고 했을 때 15초만에 끝낸 경우도 있다.내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지원자들은 너무 당황해서 실수를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노란불
'다른 직무를 지원했으면 더 잘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이정도 스펙이면 다른 회사에서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것 같은데 우리 회사를 지원한 이유가 뭔가요.'
'스마트하게 일하시는 분인 것 같은데 우리 회사는 사정상 야근이 잦아요. 다른 스마트한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낫지 않아요?'
'전공 성적이 이정도면 굉장히 훌륭하신데 전공을 살려서 활약하시는게 더 낫지 않으시겠어요?'
노란불이다. 면접관이 어느정도 이미 붙여줄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곤란한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마음에 든 사람이 혹시나 실수를 하게 되면 다른 면접관에게 점수를 깎일 수 있기 때문이다. 떨어트릴 사람에게는 시간 아깝게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저 질문은 당연하게도 지원자를 걱정하거나 역량을 높이 평가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자소서건 면접 과정에서건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의미다. 더 정확하게는 우리 회사에 오래 붙어있지 않고 금방 도망가버릴 것 같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면접관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야근할 수 있습니다.', '어떤 직무건 시켜만 주십시오', '어차피 전공을 살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식으로 단답형으로 대답하고는 멀뚱멀뚱 쳐다보는 일은 없길 바란다. 자신이 도망가지 않을 사람임을 다시 한 번 확인 시켜줘야 한다. 자소서 내용을 그대로 말하는 것보다는 '자소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이 회사를 선택한 동기는 확고합니다.'는 식으로 잠깐 시간을 끌면서 그 안에 사소하더라도 자소서에 없던 추가내용을 짜내든지 정 자신이 없으면 자소서 내용을 환기시켜주는 선에서 끝내도록 한다. 당황했기 때문인지 정말로 잘못 알아들었기 때문인지 많은 지원자가 이런 종류 질문에 동문서답을 하면서 무너지는 모습을 많이 봤다.
마지막 한마디
유언 얘기가 아니다. 면접장을 나서기 전 마지막 기회에 대한 얘기다. 반드시 손을 들어 한마디 해야 한다. 가점이 될지 감점이 될지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렸다. 남의 시간을 점유하겠다며 길게 여태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한다면 꽝이다. '너무 긴장해서 많은 것을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제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는 식의 아쉬움 유발전략은 '그럼 다음 기회에~'는 대답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는 모든 것을 쏟아내지 못했어도, 뭔가 잘못한 것 같아도 일단 다 잊는다. 오늘 정말 뜻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이 회사를 들어오기 위해 준비했던 모든 것을 오늘 이 자리에 다 쏟아냈다고 후련한 표정으로 20초 이내에 이야기 한다. 면접관이 오늘 당신이 한 얘기를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란 착각은 버린다. 결국 남는 것은 이미지 뿐이다. 마지막 한마디가 하루종일 긴장하면서 앉아 있던 나의 이미지를 결정짓는다.
최대한 짧은 글을 쓰기 위해 두괄식으로 말하라는 둥 정자세로 앉으라는 둥 뻔한 얘기는 과감히 생략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겐 뻔한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막막한 누군가에게는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빨리 합격하고 게임하러 갑시다. Waaaaaa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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