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말고 딴 거

2018. 5. 17. 19:36

나는 소주가 제일 좋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사회생활 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술을 마셔야 한다. 나는 술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소문은 좀처럼 나지 않는다. 나름대로 생각해본 이유는 두가지다. 술자리나 분위기보다는 자체를 좋아한다. 그리고 소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술이 소주이고 소주를 싫어한다 말하면 잔소리를 꽤나 들을 수 있다. 어떻게 해서라도 소주를 먹고 먹여야 하는 사회에 대한 고육지책으로 나온 과일맛 소주에 조차도 탐탁치 못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다행히 나는 소주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큰일이 나지는 않지만 사회생활에 좋은 일이 생기지도 않는다.

 

소주는 옳다. 소주는 내가 잘나갈 때나 못나갈 때나 언제나 함께 해준다. 노숙자부터 재벌까지 소주를 마신다. 싸고 맛있다. 맛없다고 칭얼대는 녀석들은 아직 삶에 치여보지 않은 애송이다. 자꾸 먹다 보면 달달하게 느껴진다. 그제서야 완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아무리 취할때까지 마셔도 다음날 숙취가 없이 깔끔하다. 양주니 와인이니 우리네 서민에겐 어울리지 않는 허세다. 비싼 깔짝깔짝 마시면서 교양 있는 척하는 것보다 모두 소주에 얼큰하게 취해 애환을 나누는 것이 절대적으로 가치있다. 외국사람들이 정이 없는 것은 우리처럼 소주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기타 등등 어쨌든 소주는 최고다.

 

100% 옳은 말씀들이다. 절대로 동의한다. 현실에서도 군말없이 소주를 넙죽넙죽 받아 마시고 있다. 넷상이라고해서 소주에게 반기를 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소주의 위세에 눌려 양주나 와인이라고 하면 덮어놓고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꼬냑..이라는 것과 엄청 맛있었다는 것만 안다.

 

 

홀로 집구석에서 남몰래(?) 홀짝홀짝 마시며 외도한 경험을 공유해보고 싶었다.

 

용기와 허세 사이에

 

내가 양주를 처음 제대로 마셔본 것은 신혼여행 때였다. 안해봤던 결혼도 했겠다 용기가 솟았을까 평소에는 생각도 본적 없는 양주를 괜히 사보고 싶었다. 면세점에서 와인과 양주 사이에 고민하다 있는 기분의 최대치에 해당하는 금액이 붙어있는 양주를 골라 들었다. 그때는 양주가 그냥 양주였지 종류가 뭔지도 몰랐다. 발렌타인 21년산이었다. 그나마도 가격이 너무 비싸 사지도 못하고 미니 사이즈를 샀다.

 

허세가 몸을 지배했는지도 모른다. 독한 술냄새는 21 묵은 깊은 풍미로 다가왔고 속이 타들어갈 같은 열기는 스트레스와 긴장에 잔뜩 움츠러든 나의 가슴을 쓸어내려주는 따스한 온기로 느껴졌다. 양도 둘이 나눠먹기 좋았다. 간만에 기분좋게 눈을 감았고 다음날 가볍게 눈을 떴다.

 

바카디 럼과 발렌타인 어쩌구 가성비가 좋은 무난한 맛

 

이후로도 계속 용기와 허세가 번갈아 가며 나를 두들겼다. 좋아하는 게임도 돈이 아까워 꾹꾹 참았다가 세일 때나 사는 내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브랜디 한잔(실제로는 한모금 될까말까한) 8,000원이나 써봤을 정도였다. 경험이 쌓일수록 처음의 감동을 느낄 수는 없게 되었다. 그래도 술을 즐기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아무도 보는데 정도는 괜찮잖아?

 

내가 여태까지 마신 기준에 따르면 양주의 가성비는 소주에 비해 나쁘지 않다. 마트 기준 병에 3만원, 맘먹으면 7만원(사실 사봤다) 정도가 구매 범위다.  주머니 사정상 자리수가 늘어나면 본전 생각이 너무 같아서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술을 마시면 만취해야 하는 스타일이라면 소주의 가성비가 압도적으로 높다.

 

일단 술을 맛으로 먹을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 안주도 없이 독한 술을 홀짝이는 드라마와 영화 주인공을 걱정해주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굳이 입가심할 안주는 필요없다. 자체의 맛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종류마다 브랜드마다 맛이 달라 골라마시는 재미도 있다. 얼음에 타먹어도 되고 탄산수에 타먹어도 되고 그냥 아주 조금씩만 마셔도 되고 마시는 방법도 다양하게 고를 있다.

 

커크랜드 스파이스드 럼은 인위적인 맛이 너무 강해서 별로 였다. 일본어로 써있는 하치쿠마는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다. 싸고 달다.

 

가장 기분이 좋을 때 멈출 있는 것도 장점이다. 가격이 가격인지라 정도 마시고 나서 이상 맛이 느껴지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멈추게 된다. 비싼 녀석을 단지 취하기 위해 들이붓는 행위에 몸이 먼저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보통 이때가 적당히(?) 취기가 올라와 마음이 편해지는 때이다. 원래 항상 이쯤 되면 기분이 업된 나머지 내일의 나에게 미리 사과하면서 술을 마시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이제는 굳이 이상 마시지 않아도 뜨끈하게 올라오는 여운을 즐기며 가장 좋은 때를 길게 가져갈 있다.

 

술을 권하는 사람도 따라줘야할 사람도 없다. 술과의 싸움이 힘겨워 미간을 찌푸리는 사람도 없다. 이미 열두번도 들었던 '왕년의 얘기' 쏟아내는 사람도 없다. 주의를 분산 시키는 테이블의 왁자함도 없다. 미각을 얼얼하게 만드는 맵고 음식도 없다. 어쩌다 있는 이런 나만을 위한 한잔 마셔도 뭐라 사람 없다.

 

소주말고 딴 술 보기(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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