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부터 먹고 들어가는 웨이스트랜드

 

폴아웃 시리즈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진 웨이스트랜드, 폴아웃이 히트를 치면서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웨이스트랜드도 속편이 출시되었다.

RPG 팬중에서는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만큼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핵전쟁 이후) 세계관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현재 우리 세상과 비슷한듯 아닌듯한 묘한 동질감, 이질감이 플레이어를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웨이스트랜드는 핵전쟁 이후의 인류를 그럴듯하게 그려냈다.

사회구조가 무너지다보니 한 쪽으로만 비정상적으로 발전한 과학기술, 피폐한 삶, 방사능,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여러 집단들,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부정적 기운 등 레인저로서 몇군데만 돌아다녀도 게이머는 게임의 세계관을 느낄 수 있다.

 

디렉터스 컷 무엇이 다른가

앞선 리뷰에서 말했듯이 웨이스트랜드2는 디렉터스컷이라는 부제를 달고 2015년 10월에 새롭게 출시되었다. 기존 웨이스트랜드2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던 유저에게는 무료로 제공했다. 개인적으로는 발더스 게이트나 아윈데 등 고전게임을 제외하고 EE니 디렉터스 컷이니 하며 출시하는 것을 아주 좋게 보지는 않는다.

당연히 수정하지 않는 것보다 낫지만, 10년 넘은 명작을 리메이크하는 것도 아니고 출시한 지 얼마되지 않은 게임의 새 버전을 내놓는다는 것은 그만큼 개발일정에 쫓겨 급하게 만들고 출시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어찌되었든 현재 게임을 구매하면 자동으로 디렉터스 컷이 딸려오므로 본 리뷰도 디렉터스 컷을 기준으로 작성하고자 한다.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먼저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제작진이 공지한 내용을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다.

 

- 그래픽 및 게임엔진 개선

오리지널 디렉터스 컷

- 성우 보이스 추가 ( 주요 장면 및 캐릭터)

- 정밀타격 시스템 도입, 적의 특정 부위를 타격 가능 

- Perk 시스템 추가 (스킬업에 따른 추가 특전을 의미함)

스킬이 많아도 너무 많다

- Quirks 시스템 추가 (캐릭터 기본 특성 또는 개성을 의미함)

- 그 외 전체적인 밸런싱 수정

 

오리지널에 비해 개선된 점이 많지만 유일한 단점은 아직 한글화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5월 말 경에 유통사 공식한글화가 진행된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것으로 보인다.

 

웨이스트랜드의 매력과 뒷통수

RPG팬이다보니 대작 RPG가 나왔다 하면 일단 그것만으로도 기뻐서 쓴소리를 잘하지 않는 편이지만, 3종의 게임을 비교하는 리뷰이므로 다른 두 게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어 이를 위주로 리뷰를 진행하고자 한다.

굳이 뒷통수라는 말을 한 이유는, 출시전 기대가 엄청 컸고 더 나아가 출시 이후 첫인상까지도 좋았기 때문이다.

폴아웃1 부터 폴아웃3, 뉴베가스까지의 팬으로서 오랜만에 나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RPG였기에 출시와 함께 두말않고 질러버렸다.

몸에 기판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괴짜 컨셉

개발사에서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웨이스트랜드1이나 폴아웃2의 게임성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오면서 그래픽, 인터페이스, 게임컨셉 해석만 요즘 기준에 맞춘 리메이크 개념으로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처음 몇시간은 기대했던 걸작이 나왔다며 감탄을 연발하며 게임을 플레이했지만 중후반으로 갈수록 게임의 흥미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글화가 되고 다시 플레이하고 디렉터스컷이 출시되고 다시 플레이해보았지만 갑자기 하기 싫어지는 이 느낌이 왜 오는지, 어디에서 오는지, 처음엔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게임을 겨우 다 끝내고 시간이 좀 흐르고 나자 어떤 부분이 아쉬웠는지 명확해졌는데 이 기회에 이를 공유하고자 한다.

 

- 데저트 레인저는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스쿼드 시스템

각 역할에 맞게 스쿼드를 구성할 수 있다

주인공인 '나' 외에도,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며 살아 숨쉬는 듯한 '동료'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RPG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제작사의 역량으로 각각의 스토리와 설정을 매력적으로 채우고 게이머는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웨이스트랜드도 주인공을 포함한 총 7명으로 스쿼드를 구성할 수 있으며, 이중 4명은 미리 생성해서 게임을 시작할 수 있고 나머지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동료로 영입할 수 있다.

극초반에 영입가능한 강력한 동료 안젤라데쓰, 1편의 주요캐릭터

웨이스트랜드에는 정말 다양하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다. 

동료와 대화하다보면 어떤 캐릭터는 개그캐릭인줄 알았는데 나름의 사연이 있고, 어떤 캐릭터는 개그캐릭으로 밝혀지기도 할 정도로 동료에 있어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웨이스트랜드2의 문제는 동료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게임 설계에 있다.

스쿼드에 게임 진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역할이 포함되어야 하다보니 다양한 동료를 활용해볼 수 있는 기회가 의외로 적고, 2회차 3회차 플레이에서도 결국 거의 비슷한 스쿼드 구성으로 진행할 수 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다.

돌격 소총, 스나이퍼, 짐꾼 및 근접, 치유계, 각종 스킬 담당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게임진행에 애로사항이 꽃펴 짜증부터 밀려오기 때문에 스쿼드 구성에 유저의 특징을 주기 힘들다.

스쿼드 구성도 제대로 못하고 초반 안젤라데스를 영입하지 않고 게임을 진행한다면 루키 난이도가 아닌 이상, 초반에 공포의 두꺼비에게 좌절하게 될 것이라 장담한다.

또한, '주인공' 이란 개념이 희미하다보니 플레이에 애착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동료에게는 모두 스토리가 있으나 막상 유저가 생성하는 '주인공'의 설정란은 공백으로 남아있는데, 플레이어만의 온전한 캐릭터를 만들라는 개발사의 배려겠지만, 결국 능력치나 특성을 고려해서 스쿼드를 생성하고 나면 주인공이라는 개념은 사라져버린다.

 

- 전략적인 턴제 전투방식...?

폴아웃과 엑스컴을 조화시킨 전투방식으로, 배경을 엄폐삼아 AP포인트를 기반으로 전투를 진행한다.

처음에는 두게임의 장점만을 가지고 온 것으로 보여 굉장히 즐겁게 플레이 했으나 전투자체가 전략적이라고 부르기엔 약간 부족한 감이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비전투인원은 뒤로 빠지고 전투인원은 안전한 곳에 숨어서, 접근하는 놈은 돌격소총으로, 먼 곳에 있는 놈은 저격으로, 몰려있으면 수류탄으로 죽이면 전투가 마무리 된다. 

폴아웃1,2의 쫄깃함과 엑스컴의 전술적인 장점을 잘 조화시킨 것으로 보였으나, 폴아웃의 단순무식한 전투에 엑스컴의 껍데기만 살짝 씌운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의 상황이 엄폐물이 확보되어있고, 시야는 항상 트여있으며, 동료들의 이상행동도 폴아웃에 비하면 재롱 수준으로 전투의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힘들다.

판타지나 SF세계관에 비해 당연히 스킬의 다양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므로, 전략적 전투를 위해 AI와 난이도에 대한 고민이 조금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게임 액션이 굉장히 간결하고 템포자체도 빨라서 쉽게쉽게 넘어갈 수 있어서 스토리에 집중하고자 하는 유저에게는 오히려 매력적인 면일 수도 있다.

 

- 선택과 결과, 스토리

웨이스트랜드에는 수많은 집단이 존재하고 플레이어는 분기마다 매순간 선택을 하며 집단과 관계를 만들어가며 최종 엔딩을 향해 나아간다.

플레이어가 선택한 집단마다 다양한 퀘스트가 준비되어 있고 주인공의 선택에 따라 엔딩이 달라지기 때문에 1회차 이후에도 즐길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도 역시 함정이 있다.

일단, 엔딩의 변화가 텍스트 몇줄로 표시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님을 확실히 하고자 한다.

폴아웃에서와 마찬가지로 수십시간의 플레이 끝에 나오는 나의 선택과 결과는 화려한 엔딩으로 고정되는 것보다 글로 보이는 것이 오히려 더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War Never Changes - Fallout 4 Poster by edwardjmoran

정작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뻔한 플롯과 더불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의 나열이었다. 

데저트레인저가 어딜가든 두개의 집단이 서로 대치하거나 동시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절묘한 상황이 계속되는데 여기서 주인공은 누구를 도울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플롯이 뻔하면 선택지에서 고민이 되게끔 각 집단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가 매력적이어야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초반 하이풀과 AG센터 선택 외에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선과 악, 득과 실이 교차하고 한번에 여러 팩션이 관계하는 복잡다단한 상황도 있었으면 다음 플레이가 기대됐겠지만 1회차를 플레이하면서도 결말이 뻔히 보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2회차 3회차를 플레이한 것도 1회차에 했던 선택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 때문이 아니라 그저 안해본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였는데, 퀘스트 해결방식도 대동소이 하다보니 아무래도 지겨워질 수밖에 없었다.

A, B, C 분기는 있으되 A-1, A-2, B-1, B-2 .... 의 자잘한 선택들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어떤 분기를 선택해도 결국 플레이 내용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명작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웨이스트랜드2 디렉터스 컷은 스토리, 전투, 캐릭터, 시스템 모두 좋은 게임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플레이어들에게 명작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역시 게임디자인과 유저 편의성에 대해 요즘 입맛에 맞는 재해석과 고민이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자는 게임내 밸런싱과 설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게이머의 선택을 위해 여러 선택지를 만들었지만 너무 잘게 나눠놓거나 밸런스가 맞지 않아 오히려 유저의 선택의 폭을 매우 좁힌 점이다.

일례로 돌격소총, 샷건, 권총, 저격총 등등등, 자물쇠, 금고, 알람, 함정, 토스터 등등등, 위협, 아첨, 교활 등등등, 너무 잘게 나뉘다 보니 오히려 플레이어의 선택이 정형화되는 결과를 낳아버렸다. 

스킬을 더 카테고리화 했다면 전략과 상황에 맞는 유저의 판단과 입맛을 더 잘 반영할 수 있지 않았을까.

후자는 요즘 게임답지 않게 유저편의성이 떨어지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는 무의미한 행동의 지나친 반복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도대체 몇번을 타야 하는지..

패스트 트래블, 스킬 사용 시간 단축만 구현했어도 간단히 해결될 문제를 왜 처리하지 않아서 점수를 깎아먹었는지 개발사에 묻고 싶다.

 

웨이스트랜드2의 여러 매력과 아쉬운점을 함께 살펴보았다.

폴아웃이나 다른 고전게임을 전혀 접해보지 않은 게이머의 구매선택을 위해 작성한 리뷰다 보니 그냥 넘어가줄 수 있는 부분도 짚고넘어 가는 바람에 뭔가 부족한 게임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포스트아포칼립스 세계관을 좋아하거나 폴아웃의 팬이라면, 웨이스트랜드라는 이름을 잘 기억해뒀다가 세일을 할 때 꼭 구매해서 플레이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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