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264일차

2025. 5. 3. 10:21

만년 준비중

역시나 어렵다. 어느새 준비 1년차를 향해 달려간다. 퇴직에 대한 충동과 출근에 대한 공포는 준비 과정에서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지만 만성적인 괴로움은 역시나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있다. 단지 급성과 만성의 비중만 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급성이 줄어드니 일단은 준비 기간을 좀 더 길게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고무ㄴ적이라고 생각한다.

 

저번 포스트를 작성한 뒤로 정말로 아주 뜻밖의 이벤트가 생기는 바람에 전에 다니던 회사로 돌아갈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졌다. 퇴직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복직이라?

 

고민의 시작

결론은 이미 내렸고 행동에도 옮겼다. 최근 복직해서 출근을 했다. 준비 xx차 포스팅을 혹시 이제는 안써도 되지 않을까하는 묘한 기대감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돌아왔다.

 

옮길 때 많은 고민을 했다. 떠나려는 곳과 돌아가려는 곳 모두 장단점이 확실했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돌아가려는 곳에서 근무했을 때는 지금 떠나려고하는 곳이 피난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다시 또 반대가 됐다. 

 

정말 과거는 항상 추억이 되고 미화되는 것 같다.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자연스럽게 그 곳에서의 좋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이 곳에서의 좋았던 기억이 떠오르며 마음을 흔든다.

 

객관적인 지표와 현재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 상황을 비교해가며 엄격 근엄 진지하게 고민해보았지만 좀처럼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생각해보니 그냥 단순히 호기심이 들었다. '아 옛날에 좋았지'가 정말 맞는지 안맞는지 직접가서 확인해볼 기회는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직을 자주하는 능력자들 조차도 항상 새로운 곳으로 가기 때문에 과거 회사를 그리워하며 미련을 가지지 않을까? 나에게는 직접 확인해볼 기회가 주어졌으니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횡재한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잘 된 선택

그러므로 준비는 계속된다.  

 

'후 너희들은 이런거 하지말아라' 

과거로 돌아가려는 사람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떠나간 곳은 떠나간 이유가 있는 것이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그 때보다 더 안좋은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호기심에 장막을 한번 들춰봤고 결과도 속시원히 확인해서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선택의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현실적인 고통은 어쩔 수 없다.

 

결심하고부터도 상당 기간 기다리며 기다리던 새(구)직장 첫 출근날의 악몽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인터넷 짤을 보면 철조망이나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죽일 듯이 짖다가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치워지면 갑자기 짖는 것을 멈추고 머쓱하게 돌아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강아지들은 갇혀있는 개체를 약자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건너편에 갇혀있는 녀석이 약자인 주제에 뻗대는게 꼴보기 싫어서 마구 짖어댄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회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남아있는 사람 입장에서 떠난 사람은 이 곳을 버티지 못한 약자다. 떠난 사람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정도 서로간의 인식의 차이는 어찌보면 사소한 오해일 수 있다. 하지만 떠났던 사람이 다시 돌아온다? 그러면 오해는 더이상 사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그렇지'

 

꽤나 다양한 버전의 소문이 퍼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근 몇년간의 헤어짐이 서로에 대한 오해와 혼선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는 점도 깨달았다.

아무런 근거나 예고없이 존대가 반말이 되고 친근함이 무례함이 되고 정감이 반감이 되는 대환장파티를 각오해야만 한다.

 

어쨌든 내 삶을 팔아 돈을 얻는 근로행위가 지속되는 한 이 모든 것들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굴레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더 뼈아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준비를 계속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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