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팠다

몸이 아팠다. 데이브더다이브를 플레이할 때도 아팠지만 바로 저번주까지도 아팠다. 2024년 겨울은 아픈 걸로 기억될 것 같다. 아픈 와중에 이미 패드 맛을 톡톡히 본 터였다.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침대위에서 눈이 번뜩였다. 

 

발더스게이트3. 쿠궁.

 

부담스럽다

발더스게이트3라는 이름을 본 순간 설치하기 전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고 열이 오르고 잔기침이 나온다. 조기 엔딩 포함하여 3회차까지 플레이했건만 여전히 쉽게 느껴지지 않고 부담스럽다. 몸이 멀쩡할 때도 힘들었던 게임인데 성치않은 몸으로 게임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아픈날과 쉬는날이 많았다. 하루정도 더 몸져눕고 나니 마치 발더스게이트3 말고는 할 것이 없는 것 처럼 느껴졌다. 연말은 길고 몸은 쉽게 나을 것 같지 않았다. 침대 밖을 벗어나는 일은 이제 다시는 없을 것만 같을 정도로 아픈나날이 이어졌다.  방에 가습기를 켜고 편한 베개를 깔고 오한을 이겨내기 위해 담요를 둘렀다.

 

게임패드를 대령하라! 기침 쿨럭이는 호령 뒤에 게임패드의 미약한 진동이 이어졌다.

 

부알의 검 출격

할만하다

키마로 할 때도 온갖 잡템에 인벤토리 정리하느라 바빴고 카메라 돌려보기도 힘들고 수많은 행동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 부지기수였다. 과연 게임패드로 감당할 수 있을까. 몸이 아프니까 극한의 효율적인 플레이보다도 느-긋함을 최우선 목표로 두었다.

 

침대 밖으로 못나가는 나 대신 우리의 타브가 발더스게이트를 누빈다는 생각으로 아주 천천히 느긋하게 플레이했다. 그런 플레이에 게임패드가 최적이다. 인터페이스가 게임패드에 최적화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일단 패드 최적화를 위해서는 선택할 게 많으면 안된다. 특성상 한칸한칸 움직일 수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인벤토리 정리는 포기해야만 했다. 아이템을 나누고 분배하고 이런 행위들은 머리만 아프다. 과감히 스킵. 

 

그 부분만 포기하고 나면 나머지 부분은 의외로 쾌적하다. 전투는 원형 명령 인터페이스를 통해 한칸한칸 고르지 않고 스틱으로 방향을 돌려 선택하면 됐다. 물론 나중에는 기술과 아이템이 많아져서 원형 명령 인터페이스가 몇개고 불어나기 때문에 원형 명령바 자체는 선택을 해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이를 정리하여 나에게 맞게 최적화 할 수도 있지만 아이템을 바꿔끼거나 기술이 늘거나 줄게 되면 안타깝게도 실컷 정리해둔 명령들이 흩으러져버린다. 이 부분도 과감히 포기. 편두통이 심해지면 포기도 쉬워진다.

 

 

몰입감이 좋다. 마법을 쓰려고 할때의 미세한 진동. 마치 내 손끝에서 위브가 발사 전에 춤을 추는 것만 같다. 적을 박살낼 때의 떨림도 좋다.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마우스로 여기저기 클릭해서 이동하는 것보다 스틱으로 이동하는 편이 더 몰입감이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약간의 불편함. 즐거움 가득. 여기까지가 패드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발더스게이트에 입성하자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wasd가 있으니까

앞서 말했다시피 캐릭터의 기술이 많아지고 아이템이 많아지고 할 수 있는 행동이 많아지면서 패드의 불편함이 조금씩 더 느껴졌다. 복잡한 건물 내부에서 여기저기를 살펴보기에도 피로함이 더해졌다. 불편함은 커지고 그만큼 즐거움은 줄어들었다. 

 

그래도 시점과 이동방식은 포기하기 싫었다. 패드로 이리저리 움직였던 이번 플레이는 여태까지 내가 플레이했던 발더스게이트3와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답은 있었다. wasd모드. 키보드로 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진동도 놓치고 싶지않고 침대밖으로 나서고 싶지도 않았지만 부알의 검 윌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두눈 질끈 감고 컴퓨터 앞에 각잡고 앉았다.

 

앉자마자 피로감이 몰려왔다. 발더스게이트3가 어지간히 재밌는 게임이 아니었다면 여기서 플레이는 종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내성굴림들만 봐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그래서 한동안은 또 플레이를 못했다.

 

대형 패치 전 마지막 엔딩을 보고 싶다

곧 서브클래스를 추가하는 등의 대형 패치가 예고되어 있다. 그전에 어떻게든 윌의 결말을 맺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회차에서 처음으로 오리진 캐릭터를 플레이 해보았는데 생각보다 잘 굴러가서 놀랐다. 오리진 캐릭터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오리진 캐릭터를 플레이한다는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자연스러운 정보전달과 선택지로 잘 풀어낸 것으로 보인다. 

 

'실제의 오리진 캐릭터라면 이런 선택을 할텐데 내가 이런 선택을 한다면'의 차이를 보는 재미가 확실했다. 커스터마이징한 주인공(타브)을 플레이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오리진 캐릭터도 충분히 재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대형 패치가 이루어지고 나서는 어두운 충동(다크어지)를 플레이해볼 계획이다.

 

엔딩을 향해 달려가면서 정말 놀라고, 또 놀라고, 놀라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내가 예전에 플레이했던 게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몰랐던 요소들이 툭툭 튀어나와서 즐거움과 놀라움을 주었다. 1회차부터 퀘스트 공략은 일절 보지않고 플레이 했던 터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 하다보니 악당이 되어있다거나 어 하다보니 영웅이었다가 다시 악당이 되어버리는 그런 좌충우돌 플레이를 했다보니 이번에 각잡고 윌의 인생을 대신 플레이하면서 새로운 내용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처음 플레이 할때는 사실 윌이 합류하기 전에도 죽어버려서 윌 같은 애가 있는줄도 몰랐다.

 

 

아마 다크어지를 플레이하게 되면 또 다른 놀라움이 있을 것 같다. 이제 총 플레이 시간은 고작 300시간. 이번 엔딩을 한번 보는데는 80시간 가량이 걸렸다. 아직도 파헤칠 것은 무궁무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막 ~ 2막 사이의 1.5막에 해당하는 언더다크는 이번 플레이에서는 가보지도 않고 바로 2막으로 가버렸다. 게다가 악성향 플레이도 의도적으로는 한번도 해보질 않았다. 악성향을 플레이하게 된다면 아마 또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발더스게이트3는 정말 할 게 너무 많다.

 

 

 

 

발더스게이트3를 플레이하면 정말 많은 곳을 갈 수 있고 정말 많은 사건과 인물과 조우하게 된다. 사실 발더스게이트3는 극효율을 추구하는 게임으로만 접근하게 되면 꽤나 피곤하다. 선택지에 대한 보상도 다르고 플레이에 타임도 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공략을 보는 것도 게임의 피로도를 줄이는 방법이지만 모든 상황에서 최적의 효율을 찾아 공략을 보게 된다면 아마 지쳐서 게임을 삭제해버릴 것이다. 

 

어찌저찌 카를라크와 함께하게 됐고 또 떠나보내면서 엔딩을 맞이했다. 시한폭탄 같던 게일도 터지지 않았다. 사실 아직도 악당들의 음모가 어떻게 실현되었고 뭐가 어떻게 뒤집히고 꼬인 것인지는 명확히는 알지 못한다. 그저 '내가 만약 윌이었다면'을 생각하면서 모험을 하고보니 어쩌다 또 다시 세상을 구하게 된 것 같다.

두꺼비... 안녕

 

 

 

 

발더스게이트3는 1막보다는 2막이 2막보다는 3막의 비중이 크다. 일반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서도 레벨 디자인 측면에서 봤을때는 3막의 비중이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레벨 상한이 12로 매우 낮기 때문이다. 레벨 상한에 도달하고 나서는 좀처럼 3막의 근사한 모험들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럴 때는 레벨 상한을 20까지 올려주는 모드를 추천한다. 이번 회차에서 한번 깔아봤는데 3막을 그야말로 씹고 맛보고 쪄먹고 난리였다. 추천한다.

 

다음 플레이는 독감 내성굴림에 성공하게 되고 패치가 이루어진다면 다시 다크어지와 함께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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