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호흡 불량


요즘에는 더 이상 특별할 사건이라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서도 의지가 이미 꺾였기 때문에 일이 터져도 마음 한켠은 불안해도 분노나 빡침이 올라오지 않는다.  퇴사한다고 마음먹으면 현재 하고 있는 일도 맘편히 놓아버릴 수 있을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한다.


잘할 엄두는 나지 않으면서 속시원히 포기할 수도 없다. 체면 때문인지 알량한 책임감 때문인지 모호하다. 떠나는 뒷모습을 아름답게 남기려고 하는건지 그렇다면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한다는 것인지 그냥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라는 마음가짐인건지 그 어느쪽도 아닌건지 모호하다. 혼란스럽다. 


딱히 무슨 일이 없음에도 갑자기 심한 불안감이 몰려온다. 숨이 얕아진 것이 느껴진다. 깊이 숨을 들이키려고하면 생전 처음해보는 운동을 한 것처럼 손끝이 저려오고 가슴 쪽에 힘이 빠져 바람빠진 풍선처럼 너덜너덜, 부풀어오르질 않는다.


예전이라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잘할 수 있어’ ‘잘해낼거야’ 의지를 다졌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내부의 압력이 날아가버려 균형이 무너진 것 같다. 그럼 그냥 마음도 편히 먹으면 좋으련만 이 불편함, 어색함, 긴장감은 사무실에 앉아있으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슬금슬금 피어오른다.

 

달력을 본다


2025년 3월. 일단 뭔가 바뀌긴 하는 시기다. 달력에서는 아직 보이지 않는 날이다. 대단한 사업을 하고 있거나 대단한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것이 아닌지라 사실 마무리라고 할만한 일도, 준비라고 할만한 일도 없는데 시간만 많이 남은 기분이다. 


막연히 퇴사를 생각할 때는 준비할 것이 많을거라 생각해서 거창하게 글을 쓰기 시작한건데 막상 퇴사를 진짜로 한다고 마음을 먹고보니 준비할 것은 많지 않다. 돈만 준비하면 된다. 그런데 돈을 많이 준비해야한다. 


지출 관리는 퇴사인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월수입은 없는데 월지출은 꾸준하다면 당연히 살아갈 수가 없다. 고정 지출을 줄이거나 유예하고 부채를 관리하고 지출 계획을 세워보는 것은 바로 시작하면 된다. 이미 앞서간 선배님들이 계셔서 이런 부분들은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방법도 어려울 것은 없었다.


단순 생존이 아닌 퇴사 이후 뭘 하고 살 것인가는 오히려 지출보다는 수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일단은 직장인인 이상 퇴사 이후를 위한 자산을 비축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일 더한다고 돈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때대로 흘러갈 뿐이다. 그래서 막상 뭔가 퇴사를 위한 준비가 붕 떠버린 것 같다. 투잡이라도 뛰어야 하나? 앞서 말했지만 그런 힘과 의지가 있었으면 애초에 퇴사라는 선택지 자체를 고려하지 않는다. 원하는 월수입 수준은? 하고 싶은 일은? 투자는 얼만큼? 기대수익은? 어떤 질문을 우선해야할지조차 알 수 없다. 워낙 사례도 많고 딱히 정보 공유도 잘 이뤄지지 않아 애로사항이 많다. 이부분은 말그대로 자기가 겪어보지않으면 미리 알 수 없는 영역인 것 같다.


결국에는 자영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영업은 쉬운줄 아느냐고 하겠지만 내 경우에는 거창한 의지나 계획이 있다기 보다는 중간에 나가떨어진 직장인을 다시 써줄 회사가 없으니 스스로를 채용해서 구제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잠깐 게임 방송을 했던 때가 생각난다. 너도나도 스트리머에 뛰어들던 광풍이 불던 시기 나도 몸을 실어본 적이 있었다. 인터넷방송도 자영업이다. 게임을 좋아하니까 성공할 수 있을거라 쉽게 생각했다. 게임을 별로 안좋아해도 게임 스트리머로 성공하는 사례를 보고나서야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투자를 많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비가 성공을 보장한다는 듯이 뭐에 홀린 듯이 마이크다 컴퓨터다 조명이다 사들이는 부류를 보면서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높은 비용과 투자를 부담하면서 성공할만한 능력도 계획도 없다. 그저 내 노동력을 싸게 팔아볼 수 있는 곳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런데도 좀 알아보니 돈이 많이 든다. 자기방에 인형 눈붙이기 가내수공업공장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면 최소 3천만원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더라. 직장인으로서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수치였다. 그냥 뭐 간판 좀 달고 쓸고 닦고 하면 되는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 안에는 이미 다 시장이 서있다. 여기도 앞선 선배들이 많은 것이다.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 같지만 결국 답은 하나다. 돈이다.  퇴사 이후에 뭔가를 해보려면 돈이 필요하다. 더 많은 돈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돈이 많으면 퇴사 이후에 뭔가를 할 필요도 고민도 없어지는 것 아닌가. 직장인으로서 짧고 굵게 돈을 많이 모으기는 어려울 것 같고 결국 가늘고 길게 가야하나. 그럼 퇴사는? 오늘도 호흡은 불량하고 머리는 어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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