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왔는데 왜 반겨주질 못하니

 

타고난 예술적 감성과 낙천성으로 하프하나 둘러매고 세상을 방랑하는 컨셉으로 검바드를 하나 만들어서 플레이를 시작한 것이 올해 초다. 검바드인 이유는 게임을 쉽게 풀어가려는 생각보다는 기스양키의 전투종족 특성을 좀 반영했다고 합리화 했다.

 

2막 끝에서 나름의 엔딩을 다 본 후에 게임을 껐던 기억이 난다. 2회차?를 끝냈다는 뿌듯함과 함께 게임을 잠시 삭제했다. 옛날 SSD라서 그런지 용량이 금방차올라서 발더스게이트같은 게임은 한 시즌에 한분씩밖에 모시질 못한다. 워해머 토탈워를 모셔오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막상 워해머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보드게임이 빈자리를 채우고 나서는 컴퓨터는 거의 켜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시끌시끌 발더스게이트3 패치 소식이 들려오니 갑자기 플레이 욕구가 솟구쳤다. 아 물론 패치는 연기다. 9월이라고 하는 것 같긴한데 과연?

 

돌아와보니 윌이 하얗게 불태웠다. 언제 이렇게 됐었지.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던 녀석이었는데 죽었던 기억이 얼핏 난다. 남일이라고 내딴에는 좋은 선택지랍시고 대충 고른 결과였던 것 같다. 나는 이런 류 게임에서는 아예 죽어서 게임이 터지지 않는 이상 로드를 하지 않는다. 공략도 보지 않고 그냥 들쑤시는 것을 즐긴다. 몰라서 짜증났던 경험보다(대개는 버그때문에 퀘스트 해결이 안되는 걸 모르고 돌아다닌다든지 등등등등) 놀랍고 짜릿했던 경험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윌이 재가 되어버린건 짜릿했....

 

아컴호러카드게임도 플레이 결과가 좋든 나쁘든 일단은 어떤 결말에 다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발더스게이트3에도 이벤트로 객사하는 선택들이 있다. 그것들이 다 나름의 엔딩이고 정당한 1회차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시 처음부터 플레이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일단은 예전에 끝을 봤던 게임 선택지를 돌려서 꾸역꾸역 이어서 즐겨보려고 하고 있다. 

 

게임 난이도에 관계없이 꼭 이벤트 뿐만 아니라 전투에서 최종 패배 하더라도 여태까지 밟아왔던 여정을 기반으로 짧게나마 엔딩을 보여주고 게임을 터뜨려 주면 좋겠다. 명예모드처럼 하드코어하게 즐기는 사람들에게만 게임을 빨리 상쾌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는 특전을 주는 것 같다. 윌을 다시 살려낼 수도없는 이 찝찝함을 안고 게임을 이어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괜한 생각이 든다. 

 

발더스게이트는 게임이 지루해질 쯤 내 캐릭터 빌드를 아주 간단하게 새롭게 바꿀 수 있다. 이런 제한이 없는 것은 유일한 오점이라고 생각한다. 빌드를 다시 짜더라도 같은 클래스 안에서 하위클래스나 빌드선택지들만 바꿀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커스터마이징도 좋지만 그것은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뭔가 게임을 더 이상 이어가기 어렵게 된 상황이 되면 깔끔한 엔딩보기 후 다른 회차를 시작하는게 롤플레잉에 더 맞지 않나라고 생각한다. 일생을 바바리안으로 살다가 갑자기 위저드로 변신하는 것은 뭔가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윌때문은 아니지만 내 바드 플레이도 이제는 놓아주어야 할 것 같은데 적절한 끝맺음이 없다. 그냥 이대로 계속 해나갈 것인가 끝내버릴 것인가. 고민이 된다. 고민하기 싫어서 또 다시 게임 삭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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