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단도 들지 말라고!!(아딱)
한줄 요약
아딱, 너무 걱정말고 아무렇게나 한번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코어 하나만 있어도 재미있다. 돈값은 하는 게임이다.
게임의 진입장벽은 무엇, 아니 누구인가
나는 고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복잡한 규칙도 아니고 시스템도 아니고 게임의 난이도도 아니다. 주변에서 뭔가뭔가 자꾸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큰 진입장벽이다.
다소 도전적으로 들리기도 하고 기분 나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위기 환기 차원에서 말하자면 아컴호러카드게임, 이른바 아딱의 잊힌시대 확장팩을 구매했다.
원래는 개정판 코어와 던위치만 가지고 있었는데 하다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재고가 남아있는 잊힌시대를 사버렸다. 조사자 확장, 시나리오 확장, 돌아온 잊힌시대까지 모두 샀다. 조사자 확장에는 플레이어의 덱을 발전시킬 수 있는 플레이 카드가 포함되어 있고 시나리오 확장은 말그대로 캠페인 시나리오만 추가 된다. 돌아온 시리즈는 PC게임으로 치자면 DLC확장판에 대한 패치버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DLC를 조금 더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게 해주는게 주목적이지만 플레이어 카드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커뮤니티건 고인물이라 일컬어지는 고수들이건 모두 풀확장을 사는 것을 추천한다. 품절된 확장팩도 많고 쓸만한 카드도 많지 않으니까 풀확장을 살 것이 아니면 그냥 아딱은 포기하라고 말한다. 좋은 조언이기도 하고 뉴비를 걱정하는 선의에서 비롯한 유익한 충고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다만 이게 진입장벽인 것도 사실이다. 확신도 없는 보드게임에 누가 시작부터 백만원 후반에 육박하는 금액을 지불할 수 있을까. 풀확장을 살 수 없으면 게임에 관심도 갖지 말라는 말은 너무 게임을 해볼만큼 해보고 맛볼만큼 맛본 사람들의 치우친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봐서 안다' '해봐서 안다' '겪어봐서 안다'
그러니까 너는 내 말을 들어라.
이런 말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다. 딱히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은 아니기도 하다. 다들 스포일러는 조심하는데 왜 아딱에 대해서는 쉽게 김을 빼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풀확장이 없으면 아딱이 과연 재미가 없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고의 카드가 있어야만 최고의 덱을 만들 수 있을까
아딱은 최선의 덱을 만드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보통 '최고'가 최고의 가치다. 가장 효율이 높은 빌드, 아이템, 스킬만이 선택되고 나머지는 '왜하냐'는 반응에 지쳐버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아딱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떼우는 뽕이 차오르는 게임이기도 하다. 물론 최고의 카드들로 빵빵한 덱을 짜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게임이 흘러갈 때 뽕이 차오르기도 하지만 어찌저찌 게임이 굴러갈 때도 뽕이 차오른다. 애초에 게임 테마 자체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존재, 현상, 계획에 맞서는 상황이다. 운이 따라주면 덱이 구려도 해결해나갈 수 있는 것이고 덱이 아무리 좋아도 억까가 심하면 게임은 망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최선의 덱을 좀처럼 인정해주지 않는다. 카드 평가들은 엄격하기 그지없다.
이 카드는 뭔가가 조금 모자라서 아웃. 쓸 상황이 안나와서 아웃. 상위호환이 있어서 아웃.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결국 그 비싼 확장판에서 쓸만한 카드는 몇 없다.
물론 이런 카드에 대한 평가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이 자체가 앞서 말한 진입장벽이 되어 버린다. 게임을 잘 모르는 뉴비에게는 마치 그 카드가 없으면 게임이 굴러가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효율을 추구하는 카드 평가는 이미 게임에 흥미를 가지고 파고들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도움이 되겠지만 그냥 게임을 한번 즐겨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게임을 클리어? 내지는 어찌저찌 굴러가게 하는데는 50점, 심지어 30점짜리 덱도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게임 자체 설계가 그렇기 때문이다. 모든 조사자가 쓰러져도 아무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꾸역꾸역 다음 시나리오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 선택지 자체가 게임에는 분기가 된다. 그렇게 스토리를 즐기면서 서서히 다른 분기를 즐기고 싶게 된다면 그 때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60점, 70점 짜리 덱을 짜봐도 늦지 않다. 70점짜리 덱만 해도 우주가 약간만 도와줘도 충분히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은 다들 100점, 120점짜리 덱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120점 짜리 덱을 만들기 위해서는 풀확장이 필요하다. 수 백장의 카드가 의미없는 카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현재 가지고 있거나 구할 수 있는 확장팩은 큰 의미가 없는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이게 진입장벽이 아니면 무엇일까.

웨이트리스 였다가, 트럼펫 부는 사람이었다가, 그냥 도서관 사서였다가 등등등 사건에 휘말리는 인간 군상이 이 게임의 주인공이다. RPG게임에서 민맥스 캐릭터가 어색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내입장에서는 아딱에서도 최고의 덱을 갖춘 조사자도 어색하다. 단도를 들면 어떤가? 나는 이런 사건에 휘말릴줄 몰랐지만 일단 괴물이건 뭔가 튀어나오면 항상 양말 안에 숨겨두었던 단도가 요긴하게 쓰일 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재미도 있는 것이 아딱이다. 최고의 덱으로 시나리오를 파괴해가면서 깨는 것도 분명히 재미있고 그런 최고의 덱을 만들어서 공유해주시는 분들도 다들 고맙지만 그것만이 아딱의 재미는 아니라고, 보드게임의 재미는 아닌 것도 맞다. 코어만 있어도 된다. 던위치까지만 있어도 된다. 그 다음에 내가 봤을 때 마음에 드는 확장팩을 하나씩 사서 모아도 전혀 문제가 없다. 어찌저찌 사건에 휘말린 조사자로서 우주의 기운을 받아 온몸을 비비적대며 시나리오를 클리어해나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 경우에는 코어, 던위치, 잊힌시대만 있는데 머리가 벌써 아프다. 활용할 수 있는 플레이어카드가 너무 많고 조사자도 너무 많다. 그런데 풀확장을 뉴비가 갖춘다?. 아마 수천장의 카드 앞에 압도당해버려 게임을 '즐길'엄두도 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남이 추천해주는 덱에 열심히 심취하다 정작 본인이 재미를 느낄만한 요소는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운에 맡겨 보고 맞아 보는 것도 재미있을지도
확장팩을 많이 갖고 있지도 않지만 내 기준에서는 충분히 복잡하고 어렵다. 최고의 덱이라는 것은 나에겐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설령 최고의 덱을 짠들 드로우가 안되면 말짱황이고 혼돈 토큰이 억까를 하면 게임은 터진다. 어차피. 크툴루 세계관에서는 조금 더 구질구질한 재미를 기대한다. 압도적인 위기 앞에서 우연에 기대기도 하고 임기응변으로 이겨나가기도 하면서 게임을 풀어나가는 재미도 추구해보고 싶다.
그래서 덱을 구성할 때 아컴호러카드게임 어플에서 드래프트 기능을 적극 활용한다. 저어어어어엉말 이 게임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카드나 롤플레잉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카드는 고르고 나머지 카드는 드래프트 기능을 활용해서 덱을 채워나가는 방식이다. 그러면 기껏 비싸게 주고 산 카드가 버려지는 일도 없이 즐겁게 활용된다. 대부분은 즐겁지 않은 상황에 처하지만 그것 자체도 재미다. 어쨌든 엔딩으로 가는 것 아닌가. 죽거나 미치거나 다치더라도 조사자가 당하는 것이지 내가 당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모든 것을 다 대비하고, 다 이겨낼 수 있는 카드를 쥐고 혼돈의 세상을 헤쳐나가는 것도 분명 재미있는 일이겠지만 정말 우주가 나를 도와줘야만 하는 위기 앞에서 크툴루의 촉수건 동료의 바짓가랑이건 내 주머니 속 비장의 패이건 간에 우주가 내 손을 잡아주었을 때 터져나오는 비명도 큰 즐거움이라는 점을 꼭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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