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게임을 개발한다면 클레르옵스퀴르33원정대
⏱️시간절약 3줄 요약
게임 패스 감사합니다.
어려우면서도 쉬운 난이도, 단순하면서도 다양한 육성, 매혹적이면서도 슬픈 예술적인 연출로 게임을 다시 켜게 만든다.
스토리에 대한 논란과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큰 여운과 몰입을 남기며 게임 불감증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예술가가 개발자병에 걸렸나
우스갯소리로 문과생에게 이과적 소양(특히 수학)을 가르치느니 그냥 이과생에게 문과적 소양을 가르쳐서 융합형 인재로 만드는게 더 효율적이지 않냐는 말이 있다. 나도 문과지만 그럴싸하다고 느낀다. 그만큼 수학이 어렵고 막연해서 두려울 정도다.

일반인인 나에게 있어 예술이라는 분야도 수학만큼이나, 아니 수학보다도 더 어렵고 막연하게 느껴진다. 미분을 거꾸로하면 적분이고 적분을 거꾸로 하면 미분이다와 같은 말장난이나 치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이과적 소양에 대한 허세를 부리듯 예술이라는 영역도 많은 이들의 허세를 이끌어내는 것 같다.
게임은 예술이 아니다. 예술이면 안된다. 예술이면 내가 즐기기 어려울테니까. 그래서 게임에 예술 한스푼을 넣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게임이건 영화건 대중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뭔가 시도하다가 잘못되면 흔히 우리는 예술가병에 걸렸다고 한다. 쥐뿔도 모르면서 허세를 부렸다는 말일 것이다. 어줍짢은 시도를 하지말고 내 입맛에 맞는 걸 내놓으라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고 또 너무 매운만 짠맛 독한맛만 넣으면 B급이다, 저질이다, 상업적 성공에 눈이 멀었다는 비판을 듣는다. 뽕이 차오르고, 흥분이 고조되고, 긴장감이 넘치는 와중에도 섬섬함, 여운, 영감 등을 적절하게 섞어주는 것은 예술가의 소양,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가 아닐까 싶다.
개발자가 예술가의 소양까지 갖춰서 내 입맛에 딱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던 차에 클레르 옵스퀴르33 원정대를 발견했다. 네이버 멤버십 혜택에 xbox 게임패스가 포함된 덕분이다. 게임패드가 있다. 소니xm6 헤드폰도 샀다. 소파 앞에 스마트티비를 끌어왔다. 쿠션도 준비해본다.

모든게 갖춰졌으니 우리는 계속 간다.
게임을 다시 켜는게 부담스럽지 않다
일단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을 다시 켜는게 부담스럽지 않고 빨리 플레이를 재개하고 싶다. 80+시간의 플레이타임! 방대한 스토리! 엄청난 캐릭터 빌드! 누군가에겐 엄청난 기쁨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은근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앞서 말한 수식어를 가지고 있지만 스팀 라이브러리에 쳐박혀 먼지만 쌓이는 운명을 피하지 못한 게임이 많은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33원정대는 다르다.
로딩이 짧다. 내가 요즘에 토 탈워 워해머를 잘 플레이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투가 메인인데 전투를 할 때마다 30초가량씩은 앞뒤로 로딩이 붙는다. 좋아졌다고 하지만 턴간 로딩도 무시못할 수준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해당 세계는 자체 엔딩이요 종국에는 게임 자체를 켜기 힘들게 된다. 33원정대는 탐험할 곳이 많고 이전 데이터를 불러와야할(피지컬이 딸린다) 일이 많은 게임이다. 장소가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피지컬 이슈로 원정대가 갈려나갈 때마다 로딩이 길다면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33원정대의 로딩은 짧아서 거슬리지 않는다.

캐릭터 빌드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으레 양산형 게임에서 말하는 수십만 스킬 조합과 수백만개의 아이템으로 만들어가는 본인만의 캐릭터만큼 다양하지는 못하겠지만 33원정대의 캐릭터 육성과 아이템은 매우 다양하게 다가왔다. 모든 스킬트리도 한눈에 보일 정도로 단순하고 캐릭터가 장착가능한 아이템 종류도 무기와 픽토스 2가지 밖에 없는데도 다양하게 느껴진다. 목걸이, 반지, 귀걸이, 발찌, 팔찌, 엑셀러레이터, 부스터, 챔피언 포인트, 영웅 점수, 펫, 무기 부착물, 사혼의 구슬조각, 품질과 등급 업그레이드, 히든 옵션 등 자칫 조잡해보일 수도 있을만큼 복잡한 요소들이 없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육성 방향이 확확 달라지기 때문에 그렇다. 플레이 스타일이고 뭐고 강해지는 길이 결국 하나로 정해져 있다면 중간에 아무리 선택 요소가 많은들 그것은 즐거운 선택이 아니라 숙제가 되고 부담이 되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그 과정이 쉽지도 않고 지루하다면 스트레스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33원정대는 쉽게쉽게 캐릭터의 방향을 휙휙 바꿀 수 있고 자연스럽게 바꾸고 싶어진다. 그럴싸해보이는 무기 하나 습득하면 껴보고 싶고 특이한 픽토스를 먹으면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지는 식이다. 무기와 픽토스의 효과가 명확하고 단순하지만 게임 플레이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게임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아이템 하나 먹었는데 ‘파워점수 0.07% 상승’ 이런 정도라면 아무리 아이템이 많은들 다양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최고의 효율을 내는 캐릭터를 향해 고민하는 방식이 아니라 재밌는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캐릭터를 계속 상상하게 만드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얼른 다시 게임을 켜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진다.
음악과 장면. 좋다. 섬세하지만 둔중한 선율은 마치 앞으로 펼쳐질 인간 의지에 대한 찬가이자 지금까지의 괴로움과 슬픔에 대한 위로 내지는 그 자체처럼 느껴지고 캐릭터의 시선이 가는 모든 곳에는 다양한 색감으로 덧칠되어진 어쩌고저쩌고 아무튼 좋다. 예술 작품 보듯이 몇 시간이고 앉아서 볼 정도는 아니지만 그냥 휙휙 지나칠 정도도 절대 아니다. 예술이 한스푼 아니 두스푼 들어갔다.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 빨리 다시 클레르옵스퀴르가 그려지는 캔버스로 돌아가고 싶다.
게임패드와 찰떡이다. 최근 몇년간 게임패드와 함께 많은 게임을 도전해보았다. 성공한 게임도 있고 실패한 게임도 있다. GTA 처럼 키마도 그저그렇고 게임패드도 그저그런 게임도 있고 우리 33원정대처럼 쩍쩍 들러붙는 게임도 있다. 패드 조작에서 불편한 것들은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멈출 때 멈추고 갈 때 좀 가고 살살 가야할 때 급발진 하지 말라는거다. 구보, 전력달리기, 걷기, 빨리 걷기, 조금 더 빨리 걷기가 적용된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패드를 버리고 키마를 선택하기는 어렵다. 조작감 뿐만 아니라 게임 스타일도 패드에 딱이다. 인벤토리에 잡템이 넘쳐나는 게임이었다면, 사소한 선택들을 많이 해야하는 게임이었다면 게임패드의 편안함 보다는 불편함과 번거로움이 더 많이 강조되었을 텐데 33원정대는 간소하다. 잡스런 선택 따위는 없고 다 나름 굵직굵직한 선택들이다. 픽토스 바꿔끼고 무기 바꿔끼고 파티 구성 바꾸고, 이 정도에는 스틱 몇번 움직이는게 그렇게 수고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전투 QTE의 쫄깃함이나 진동을 통한 몰입감 이런거는 구태여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키마로 각잡고 해야한다는 부담이 없다.



논란의 중심: 체호프의 총은 발사 되었는가
33원정대의 스토리에 대해서는 이러쿵 저러쿵 다들 말이 많다. 그만큼 논란을 많이 불러일으키고 있고 이조차 게임의 성공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인터넷 좀 돌아다녀보면 스토리가 좋다는 사람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더 크기 때문이다.
러시아 작가 체호프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1장에 총이 등장했다면 반드시 총을 쏴야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애초에 총을 등장 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33원정대에는 정말 많은 떡밥들이 등장한다. 은유로 표현되기도 하고 복선으로 깔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지들끼리만 쑥덕거리는 느낌이라 플레이어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주의다. 약간의 스포도 싫으신 분은 바로 나가버리기~!
스토리 호불호의 가장 큰 이유는 1막, 2막과 3막간의 간극이다. 1막과 2막의 메인 주제인 우리는 계속 간다. 즉 지구가 내일 멸망해도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인간의 의지와 선대는 후대를 위해 희생하고 후대는 선대의 의지를 계승하는 인류의 영속성이 계속 강조된다.
하지만 이 모든게 부질없이 느껴질 수도 있는 결말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앞뒤가 다르다, 허무하다, 떡밥 회수가 부실하다 등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혹자는 반전이 허무해서, 스토리 자체가 좋지 못해서 게임이 구리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일단 반전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가치추구나 어떤 행위가 항상 걸맞은 결과를 수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했는데 안될 수도 있고 대충 했는데 운이 터질 수도 있다. 개연성만 있다면, 나중에 돌아봤더니 그럴만했다면 반전이 다소 허무하다고 해서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반전 보다는 반전을 다루는 방식에서 약간의 미흡함이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대단할 것 까지도 없는 반전에(사실 내 경우에는 2막 마지막까지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할정도로 둔감했지만) 너무 집중하느라 이야기 구조가 망가졌다. 스토리 자체보다는 스토리텔링에 아쉬움이 남는다.
일단 너무 2막 마지막과 3막에 이야기들이 급발진 해버린다. 1막과 2막은 뭔가 있는 것처럼 앞서말한 것처럼 쑥덕쑥덕 알쏭달쏭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사실은 쟈쟌~! 하면서 썰을 좔좔 읊어대는 기분이다. 반전이 당혹스러운게 아니라 이정도의 반전에 이정도로 공을 들였다니?하는 반전에 혼란스러워하는 것 아닐까.
1막과 2막에서 힌트와 복선을 의도적으로 많이 숨겨서 답답함을 유발한다. 뭔가 있어보이는 기분은 계속 유지되지만 사실 잘 알기는 어렵다. 초성만으로 단어를 알아맞추는 초성 퀴즈를 해봤는지 모르겠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문제 출제자에게는 너무도 명확해서 조금만 힌트를 줘도 상대가 맞출 것 같은데 막상 그 문제를 푸는 사람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33원정대도 마찬가지다. 복선을 너무 비틀고 숨기는 바람에 엉뚱한 요소를 복선으로 착각해 반전을 맞이했을 때 놀라움보다는 당혹스러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반전은 반전이면서도 결을 벗어나지 않는 선을 지켜야 한다. 갑자기 장르가 변하면 안된다. 로맨스물이 공포물이 되고 공포물이 힐링물이 되면 곤란하다. 33원정대의 반전이 결을 벗어나 장르를 벗어났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착각할 만큼 급작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다시 체호프의 총이다. 결국 인간에 대한 찬가는 결실을 맺었는가? 맺었다. 반전의 형식으로. 체호프의 총은 정확히 게이머의 심장을 향해 일발 발사되었다.
유명한 작가인 스티븐 킹이라는 양반도 이 체호프의 총과 관련해서 얘기를 했나보다. 어디서 줏어듣기로는 3막에서 총을 쏠꺼면 1막에서 반드시 총을 등장시키라고 했다 한다.
인간의 의지, 인류의 세대를 통한 영속성 등등 1막과 2막에 눈물 날 정도로 확인할 수 있다. 일지를 통해서, 널부러진 시체를 통해서, 주인공들의 고뇌를 통해서. 3막에서 반전되는 순간 절망감 내지는 허무함이 극대화 된다. 그래서 이 떡밥은 버려지거나 잊혀진 것이 아니라 제대로 활용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반전을 위한 장치로서 작동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방식에는 의문이 남는다. 반전은 앞서도 말했지만 사실 대단할 것은 없다. 이미 많은 콘텐츠에서 접한 흔한 종류다. ‘앗 꿈’ 정도의 반전은 구운몽에도 나온다. 마지막에 반전을 터뜨리는 형식으로 너무 반전에 집착하기보다는 중간부터 반전에 대해 플레이어가 고뇌하고 캐릭터에 더 몰입해보고 고민하게 하는 방식이었으면 어떨까 아쉬움이 남는다. 단순히 나는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선택이 옳은지 평가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라면 어떤 느낌일지, 어떻게 행동할지 캐릭터의 상황에 몰입해서 플레이 하는 내내 고민하게 했다면 반전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는 많이 줄었을거라 생각한다.
반전의 내용이 일부 겹쳐서 33원정대를 보며 매트릭스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지만 결이 다르다. 매트릭스를 반전 영화라고 하지는 않는다. 일찍부터 공개되기 때문에 캐릭터에게는 반전일 수 있겠지만 시청자에게는 아니다. 반전이 가져오는 효과는 최소화하는 대신 캐릭터에 대한 몰입에는 더 공을 들인다. 33원정대도 이런 방향으로 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아내와 딸을 구하기 위한 가장의 노력. 이라는 평을 하는 사람도 있다. 쿨하고 재미있는 평일 수는 있겠지만 너무 단순화한 것도 사실이다. 이미 본인의 심정이 많이 휘둘렸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기 싫어서 짐짓 하찮게 느끼는 척 말하는 것 아닐까하는 우스운 생각도 해본다. 따지고 보면 33원정대라는 게임 자체도 0과1로 이루어진 디지털 쪼가리에 불과하다. 게임에 너무 휘둘릴 필요는 없는데도 우리는 여기에 몰입해서 웃고 웃는다. 33원정대를 클리어하고 다들 이런말 저런말하는 것을 보면 자신들의 세상에 대한 진실을 깨달은 33원정대의 캐릭터들이 느꼈을 마음도 어느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고민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사이드퀘스트를 거의 깨지 않고 메인만 죽 밀었는데 35시간이 걸렸다. 클리어 후 10시간은 족히 울면서 노래를 들으며 떡밥 이야기만 찾아보았다. 여운이 많이 남는다. 그만큼 생각해볼수록 생각해볼 것이 많은 게임이다. 메시지만 잔뜩 욱여넣은 게임이 아니라 재미가 더 큰 게임이다. 장르는 완전히 다르지만 갑자기 사놓고 묵혀놨던 엘든링을 해보고 싶다. 게임 불감증은 완전히 치료 되었다. 33원정대 덕분이다.
뉴게임 플러스(이야기 진행도는 초기화하고 레벨이나 소지품 등은 그대로 유지)도 있다. 하지만 2회차는 못하겠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게임 Review(25시간 이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엘더스크롤온라인 무협 버전? 그 이름 연운 (0) | 2026.01.01 |
|---|---|
| 꾸준히 먹어야 맛있는 건 좋은건가 나쁜건가 배틀필드6 (0) | 2025.12.13 |
| 궁금한 델타포스 도대체 왜! 와이! (0) | 2025.09.21 |
| 해도해도 어려운, 하면할수록 어려운 아컴호러카드게임 (0) | 2025.04.24 |
| GTA온라인 인핸스드 패드와 다시 불태웠다 (0) | 2025.04.05 |
| 100시간만해도 만족스러운 노가다 게임(원스휴먼) (0) | 2025.02.16 |
| 게임은 침대에 누워서 패드로 즐겨보자(발더스게이트3) (2) | 2025.01.26 |
| 그냥 힐링이 아니라서 더 좋았던 잠수게임(데이브 더 다이버) (0) | 2024.12.14 |
| 망겜이 되기도 전에 이미 접었는데 왜 지금은 재밌지(헬다이버즈2) (0) | 2024.10.1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