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너무 아파서

몸이 너무 아팠다. 독감도 아니고 코로나도 아니라는데 감기가 된통 걸린 탓인지 엄청나게 아팠다. 며칠 거의 뭐 사경을 헤매는 듯한 느낌으로 누워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예에에에에전부터 스팀에 고이 보관되어 있던 게임이 눈에 띄었다. 데이브 더 다이버. 잠수게임이다. 아프다. 힐링이 필요하다. 마침 책상에 각잡고 앉아서 게임을 할 상태도 아니라서 누워서 게임패드를 잡아본다. 게임패드도 완벽히 지원한다. 좋다. 힐링이다.

 

굳이 시간내서 이 짓을?

시뮬레이터류의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 물론 토탈워 같은 전쟁시뮬레이터는 제외다. 현실에서 하는 일들을 캐쥬얼화해서 반복 플레이하는 것에 어떤 재미가 있는 것인지 이해하지 않으려는 편협한 마음이 가득했었나보다.  내가 좋아했던 어떤 스트리머분은 이렇게 말했다. 운전은 스트레스 받아도 트럭시뮬레이터는 재밌다고. 그렇다. 익숙하지만 스트레스 넘치는 일상을 게임을 통해 아무런 부담없는 상태에서 맘편히 체험하는 것. 어깨에 힘좀 빼도 되겠구나를 느끼는 것. 그게 시뮬레이터류의 게임이 주는 재미와 힐링아닌가 싶다.

 

그런데 실컷 떠든 것과 무색하게 데이브는 시뮬레이터게임이 아니다. 버스시뮬레이터21을 좀 플레이해보다가 데이브도 그런 류의 게임이라고 생각했었을 뿐이다. 옛날 핸드폰에 익숙한 세대라면 알만한 타이쿤이 꽤나 섞인 게임이다. 힐링게임이라고 생각해서 플레이했다가 생각한 것과 완전히 달라서 오히려 더 좋았던 데이브 더 다이버, 명불허전이다. 역시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게임에는 다 이유가 있다.

 

스토리와 명확한 목적

이 부분이 가장 좋았다. 흔히 볼 수 있는 농장이나 식당을 관리하는 게임의 경우에는 명확한 목적이 없다. 금액 달성 등 단기 목표는 있지만 즐거움도 언젠가는 끝나야 더욱 빛을 발하는 법, 엔딩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계속 업그레이드, 발전 하다가 어느순간 현타가 와서 접어버리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일 것이다.

 

그런데 데이브는 스토리가 있다. 엔딩이 있다. 그냥 물고기 잡아서 초밥집 운영하는 것이 이 게임의 다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스토리 미션이 튀어나온다. 든든한 스토리 덕분에 자칫 지난할 수 있는 물고기 잡는 과정, 식당 운영, 농장 관리, 양식장 관리 등등이 즐겁기만하다. 단순 노가다가 아닌 최종 엔딩을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 서브퀘스트도 작위적이지 않고 게임 흐름에 잘 따라가기 때문에 거슬리는 일이 없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바다에 풍덩 뛰어든 플레이어에게 게임은 절대 급하게 재미를 욱여넣지 않는다. 숨부터 쉬라는 듯이 잔잔한 배경음과 함께 아기자기한 도트로 꾸며진 세상을 하나씩 즐겨보게 한다. 이 과정에서 퀘스트들이 큰 역할을 한다. 게임 시작부터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게임 콘텐츠를 하나씩 해금하는 서브 퀘스트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많은 고민하지 않고 그냥 바다가 넘실대는대로 따라가다보면 힐링도 챙기고 재미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물고기 잡는게 어려우면 어떡하지. 타이쿤은 손이 빨라야 하는 것 아닌지. 사업장 효율이 너무 낮은 것은 아닌지. 직원 육성 방향은 어떡해야하나. 어디서나 극효율을 추구하는 한국인 특성상 이런 고민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그러한 재미를 추구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스타일대로 즐길 수 있게끔 나름 노가다 요소도 있고 효율을 챙길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나처럼 걱정부터 앞서서 게임을 할 엄두가 안나는 사람을 위해서도 많은 배려가 깔려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돈을 더 모아서 자동화 할 수도 있고 딱히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지 않아도 게임을 진행하는 데는 아무런 무리가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해도그만 안해도그만인 콘텐츠'로만 구성되어 있다.

 

자잘자잘한 다양한 재미

앞서 말했다시피 메인퀘스트를 진행하다보면 무수히 많은 서브퀘스트를 만나게 되는데 하나같이 다 아기자기, 자잘자잘한 재미를 준다. 무료해질 틈이 없게 계속해서 궁금증을 자아내는 식이다. 새로운 장소가 해금되고, 새로운 콘텐츠가 나오는 것은 물론, 사용자의 피로감을 낮추기 위해서 맵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이전에 이미 클리어한 지역이라고 생각한 곳도 새로운 콘텐츠를 넣어서 익숙하지만 새롭게 다시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다. 

 

예를 들면, 게임 특성상 점점 더 깊은 바다로만 들어가야 할 것 같지만 심해를 열심히 탐험하다 보면 참치를 잡기 위해 다시 근해를 방문할 필요가 있다든지 야행성 어종을 잡기 위해 밤에 근해를 방문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익숙함에 재미를 잘 버무렸다. 마냥 새로운 장소만 해금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은 은근히 플레이어에게 부담이고 스트레스인데 영리하게 잘 풀어낸 것 같다.

 

데이브의 하루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이루어지는데 아무리 늦어도 다음날 아침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만큼 새로운 이벤트가 터져나온다. 늘어질 틈이 없다. 힐링 게임이 아니다. 상어를 잡고 나서 정신 차려보면 웅크린 자세로 게임패드를 꽉 쥐고 있다.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게 되고 다양한 어종에 눈이 돌아 간다. 회쳐버릴 욕심에 주머니를 꽈꽉 채운다.

 

특별한 노가다없이 그냥 게임을 죽 밀었는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30시간 가량을 플레이 했다. 무기제작, 사업장 업그레이드 등 게임에서 제공하는 해금 요소는 한 30% 정도 간신히 푼 것 같다. 장비는 대부분 현지(?)조달로 떼워도 된다. 굳이 내가 만들지 않아도 득템의 재미가 있다. 두근두근 아이템박스에서 뭐가 나올지 기대하는 맛이 좋았다. 노가다 요소는 뒤로 제쳐두고 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서 자꾸자꾸 더 달리게 됐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고 플레이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서브퀘스트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간만에 억지 시간끌기 없이 재미로만 채워넣은 게임을 즐겼다. 

 

엔딩을 보고나니 잊었던 아픔이 다시 찾아온다. 몸은 언제쯤 나을런지... 나도 엔딩과 함께 맥주 한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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