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너무 오래 걸렸다

 

 

사이버펑크2077 나온다고 예구에다가 미리 최신 사양 컴퓨터까지 사놓고 기다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정식 출시 후 게임 첫 진입 당시의 두근거림. 이후 바로 마주한 다양한 버그에 30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컴퓨터를 끌어안고 울던 기억. 분한 마음에 괜히 잘 설치되어있던 위쳐도 삭제해버리던 열뻗침. 

 

그간 수많은 버그 패치가 있었던 것도 알지만 믿지 않았다. 그렇게 1년 2년이 흐르다 마참내 DLC 팬텀 리버티와 함께 대규모 업데이트가 적용되었다고 해서 트라우마를 극복해보자는 의미에서 새벽에 게임 설치를 걸어두고 잠을 청했다.

 

엄청난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짙은 색안경을 끼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첫 퀘스트를 무사히 클리어 하고 첫 차량 추격전이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단계까지 이르렀을 때 감동이 느껴졌을 정도니 사펑에 대한 나의 기대 수준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제서야 게임 내 도시인 나이트티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매력적이다. 번화한 곳과 뒷골목,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우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면서 확실히 예전에 비해 개선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오롯이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올라왔다. 자동차도 타보고 거리도 다녀보고 동네 불량배들도 휩쓸어 보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만들어졌어야 하는 게임이다.

 

그런데

 

 

할말있다. 사펑은 오히려 명예사 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임개발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어 현재 수준으로 정식발매가 제대로 되었다고 한들 호평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야릇찝찌구리한 생각이 슬몃 고개를 들었다. 

 

일단 그 당시의 기대감 수준은 몇년간의 떡밥투척으로 인해 굉장히 올라간 상황이었다. 그런데 발매 당시의 완성도는 완성도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터무니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정상적인 비평을 회피해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현재 수준이라고 한들 그 당시의 기대감에 제대로 호응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고쳐지지 않은 버그가 많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순간적인 프리징은 슈팅게임에 치명적이었다. 한껏 진지한 장면에서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연출하는 캐릭터들은 스토리와 연출이 중요한 RPG에 치명적이었다.

 

여전히 버그가 많다보니 버그인지 개발이 덜 된 것인지 원래 이런 건지 구분을 할 수 없는 것도 고역이었다. 캐릭터간 대화는 자주 엇갈리고 중복되었고 아무리 쏴도 죽지 않는 적은 제작자가 의도한 타이밍에만 죽일 수 있는 건지 버그인지 헷갈린다. 나에게 데미지가 들어오는 것도 연출상 데미지가 들어오는 상황인건지 진짜로 게임 플레이를 통해 피하거나 대응할 수 있는 데미지인건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을 마주칠 때도 있다.

 

스토리 몰입이 어렵다. 게임 극 초반부는 이야기 갈래가 하나다 보니 연출은 매우 인상적이고 흐름도 굉장히 자연스러워서 플레이어를 다음 이야기로 계속 끌고가는 힘이 있다. 하지만 잘짜여진 초반부를 지나 자유모험 단계에 이르러 보조퀘스트를 수행하다보면 당황스럽다.  

 

너무 큰 그림, 예를 들어 다양한 분기의 오픈월드를 목표로 개발했었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게임 내 캐릭터들의 대사와 행동이 어떤 다양한 상황과 분기에도 대에에에충 한 60% ~ 80%정도 들어맞게끔 설정되어 있다. "식사하셨습니까"라고 말했는데 "나는 파스타를 좋아해서 오늘 점심에 파스타를 먹었어"라고 반응하는 것처럼 뭔가 딱 틀렸다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딱히 게임 몰입에도 도움은 안되는 식이다. 막 화를 내야할 것 같은 상황인데도 화가 난건지 짜증이 난건지 귀찮은건지 구분이 어려울 때는 그냥 게임 캐릭터들이 하는 행동을 관찰하는 제3자로 머무를 수밖에는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흐름의 순서가 한번 엉키면 이렇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게임자체가 원래 그런 것인지 구분 할 수는 없지만 캐릭터들의 행동이 뒤죽박죽이다. 갑자기 화를 내다가 전혀 처음 보는 사람처럼 데면데면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속마음을 털어 내보인다. 아직 뭔가를 해내기는 커녕 엄청난 짓을 저질러서 쫓기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믿을만한 용병을 찾는다며 온갖 종류의 의뢰인들이 알아서 게임 내 주인공인 V에게 연락을 해온다. 버그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답답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모처럼의 한국어 풀더빙도 빛이 바랜다. 문장 단위로 보면 연기도 좋고 어색한 부분없이 매끄럽지만 대화 전체로 보면 애초에 대화 설계 자체 맥락이 난해하다 보니 연기도 상황에 맞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갑자기 욕을 해댄다거나 갑자기 울먹인다거나 갑자기 플러팅이 튀어나오면 스토리 몰입이 확 깨지게 된다.

 

내 기준에서는 갓겜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대략 폴아웃4정도의 느낌이다. 멋진 그래픽으로 상상의 미래도시를 딱 들어맞게 그린 점, 다양한 퀘스트, 틈틈이 엿보이는 유머들은 만족스러웠지만 거기 까지다.

 

앞서 말했던 단점이 너무 커서 장점의 매력에 온전히 집중하기 힘들었다. 여전히 불편하고 불친절한 UI와 중반을 넘어서면 갈수록 반복적이고 지루한 대화패턴, 전투패턴, 문제해결패턴은 자꾸만 플레이어를 엔딩으로만 내쫓는다. 이젠 더이상 오픈월드게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잡동사니와 게임 내 읽을거리에 손이 가질않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이제 엔딩으로 내달릴 시간이다. 그런 플레이어를 위함인지 몰라도 제작사의 배려?가 있었다는 점은 또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팬텀리버티는 아직 못샀다. 할인의 계절이 돌아오면 그때 또 색안경을 끼고 다시 한 번 더 2회차를 플레이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2016.06.23 - 폴아웃4 리뷰 (부제 : 6만 5천원, 스포없음)

 

폴아웃4 리뷰 (부제 : 6만 5천원, 스포없음)

나는 원망한다 누구를? 세일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사게 만든 지름신, 폴아웃3로 한껏 기대하게 만들었던 개발사, 그리고 기대에 못미친 폴아웃4를 원망한다. 스팀 라이브러리를 둘러보다

koveras.tistory.com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