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어쩔 수가 없다. 카드게임 할 때가 됐다.

마음이 허할 때는 그저 손에 뭔가를 만지작 거려야 하는 법. 키보드도 아니고 마우스도 아니고 게임패드도 아니다. 미플이다. 카드다.

아컴호러카드게임을 다시 열어 볼 때가 됐다. 던위치의 유산까지 클리어(?)하고 이제는 카르코사로 가는 길로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메이지 나이트와는 달리 그래도 아딱(아컴호러카드게임)은 다시 펼쳐보면 기억은 난다. 일관성이 있고 내용이 가벼워서라기 보다는 어차피 대부분 카드의 내용을 해석하는 부분에서 갈리는 것이지 외워야 할 정보가 많은 것은 아니다. 반면에 메이지 나이트는 카드 설명은 별거 없는 반면 룰을 잘 외워둬야 한다는 점에서 오랜만에 펼치면 다시 반나절은 공부를 해야한다.

 

어떻든 저떻든 언제나 그렇듯 그냥 냅다 덱을 구성해보았다. 어차피 난이도는 쉬움으로 확정이다. 초보들은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쉬움 난이도로 해도 화창한 주말에 열이 푹푹 오른다. 

아컴호러 카드 게임 배치 시작
민티 판과 로랜드 뱅크스의 만남

나는 사실 메타(성능) 덱은 잘 모른다. 안다고 하더라도 모든 확장팩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서 성능 픽으로 구성을 할 수도 없다. 그냥 바인드에 정리한 카드를 쭉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녀석들을 2장 씩 쏙쏙 뽑아드는 편이다. 예전에는 이 카드 저 카드 한장씩 뽑아서 덱을 구성했었는데 보통은 뽑기 운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컨셉이 종잡을 수 없게 되어 게임이 너무 어려워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경험치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2장 씩 짝을 맞춰 덱을 구성하고 있다. 

 

아컴호러카드 어플을 사용해서 드래프트를 뽑기도 한다. 3장의 후보군 중에서 좋아보이는 녀석을 뽑아 덱을 구성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다. 아딱의 스토리를 생각하면 사실 조사자들이 첫번째 시나리오부터 막 만반의 준비를 갖춰서 오기는 어렵기 때문에 임기응변식 컨셉을 도입해보는 것도 어차피 메타픽을 못하는 사람이라면 덱 구성에 고민일 때 추천할만한 방법이다.

쌓여가는 약점, 조우카드,.. 그리고 파멸

 

컨셉을 맞춰서 구성하는 방법도 좋다. 로랜드는 수사관이니까 (경찰)배지와 수갑을 가지고 다닌다는 설정이다. 대부분 괴물형 적이 나오는 시나리오인만큼 수갑은 그렇게 필요가 없지만 로랜드가 자기가 곧 만나게 될 존재가 그런 류라는 것은 알턱이 없을 거다. 기껏해야 손전등이나 챙겨왔으면 다행이다. 그래서 내가 좀 가장 선뜻 집어들기 어려운 수호자 카드는 마체테다. 아주 좋은 성능임에도 FBI요원에 가까운 로랜드가 마체테를 코트안에 숨기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마체테라도 없으면 이 징글징글한 촉수 녀석들로부터 버텨낼 방법이 없다. 눈을 질끈 감고 마체테를 쑤셔넣어본다.

 

게임은 확실한 파멸로 나아간다.

조사자를 픽하는 컨셉도 정한다. 로랜드로부터 시작하는 스토리가 가장 잘 이어지는 것 같다.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x-file처럼 수상한 사건을 수사하는 거다. 수사 과정에서 만난 참고인 민티 판. 그래서 보통은 로랜드 + 해당 확장팩에 포함된 조사자 조합으로 가는 편이다. 하지만 로랜드.. 그렇게 강력하지는 못한 것 같다. 수호자 치고는 힘이 5가 아닌 4라서 애매한 느낌이다. 다행히 탐구자의 능력을 일부 사용할 수 있지만 말그대로 일부다. 전형적인 하이브리드의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로랜드의 탓이 아니라 그의 빈약한 덱구성 탓임을.

 

무작위 약점을 기억상실을 뽑는 순간 이미 클리어는 포기

그렇게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펑

터졌다. 첫 시나리오부터 그냥 터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급하게 적을 떼어내면 또 다시 적이 나타나고 또 다시 적이 나타나는 꼴이 반복되었다. 조우카드 하나에 모든 행동이 소비되어버리니 일에 진척이 있을 리 없다. 좀 할만하면 내 덱에서 약점이 터져 나온다. 

 

민티 판의 고유 약점은 황금의 왕이라는 카드다. 이녀석을 떼어 내려면 동일한 아이콘 6개를 모아야 하는데 카드를 3장 이상 써야 하는 조건도 있다. 착실히 카드를 모았는데. 아!! 무작위 약점 중 기억상실증을 뽑아 버린 순간 이미 게임은 터진거다. 민티 판이 도움을 줄 수 없는 로랜드는 그냥 마체테 한 자루 또는 권총 한 자루 들고 있는 수사관 한명에 불과하다. 뒷주머니에는 수갑이 있겠지만 그게 대수냐. 이번에는 연극 보러 간다는 컨셉이었기 때문에 손전등도 챙겨오지 못했다. 전투도, 조사도 망했다. 나를 감싸오는 촉수를 자르고 자르다 자르면서 결국 공포에 미쳐버리고야 만다. 플레이어인 나도 짜증이 터져 나왔다.

 

 

이제는 AI 시대다

오 나의 탐사대장님, 그 이름 제미나이

나와 함께 플레이 해왔다고 믿었던 제미나이에게 따뜻한 위로를 위한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해보았다. 그렇다 이미 패배한 다음에 위로가 무슨 소용인가. AI는 멘토나 관리자가 아니라 비서로 써먹어야 한다.

 

바로 다시 제미나이에게 물어보았다. 아딱 카드 정보를 다 알고 있냐고. 자신있게 알고 있다고 한다. 자신있는 어조와는 달리 하는 말은 80%가 헛소리였다. 역시 이녀석을 믿고 함께 갔던 내가 바보 같았다고 느껴졌다. 카드 정보를 소스파일로 넣어줘야만 한다. 마침 아컴호러카드게임 DB가 있다.

 

추출하는 방법만 알면 된다. 사실 내가 알 필요가 없다. 제미나이에게 뭘 추출하고 싶은지 알려주면 거기에 맞춰 파이썬 코드를 알려준다. 내 경우에는 내가 보유하고 있는 확장팩을 기준으로 카드 정보를 다 다운 받되 조우카드와 플레이어카드를 반드시 구분하는 정보를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 제미나이가 아컴DB에서 카드를 마크다운 파일로 좍 긁어오는 코드와 사용 방법을 알려준다. 구글 코랩에 들어가서 코드를 복붙해서 실행하고 나면 내 손에는 마크다운 파일이 생긴다.

 

그런데 나도 봐야하고 나중에 내 평가를 넣으려면 구글 시트형태로 정리하는 것이 좋다. 마크다운 파일을 제미나이한테 주면서 구글 시트폼으로 정리해달라고 하면 된다.

 

그럼 대략 이런 느낌으로 만들어준다. 다시 이녀석을 노트북lm이나 제미나이 젬에다가 넣어주면 카드 정보를 간편하게 인식한다. 마크다운(MD)파일을 그대로 줘도 되는데 제미나이는 그렇게 느리지가 않은데 노트북lm은 하나하나 모두 텍스트로 인식해서 읽다보니 시간이 한참 걸린다. 이렇게 구조화 시켜두고 특정 키워드로 물어야지만 노트북lm은 대답을 빨리한다. 

 

와 이제 끝났다.. 가 아니고. 지 멋대로 룰을 마구 추가하거나 생략한다. 카드정보만으로는 부족하다. 규칙이 필요하다. 아컴호러카드게임DB 한국어 페이지가 있다. 거기에 아주 친절하게 참조 안내서, 보조 해설, FAQ까지 올려뒀다. 그냥 인쇄-PDF 한다. 구글은 PDF도 잘 읽는다. 다 넣어주면 끝이다.

 

자 이제 아까의 패배를 복기 해본다.

 

제미나이에게는 단순히 소스만 주어서는 안된다. 젬을 생성해서 지침을 줘야지만 진정한 비서가 된다. 하지만 비서라고 하면 화낼테니까 지침에서 탐사대장의 역할을 주고 나는 대원이라고 해본다. 아딱 고수의 역할, 탐사대장의 리더십, 룰마스터로서의 객관성을 요구했다. 거기에 추가로 더 재미있는 아딱을 위하여 이야기꾼 역할도 요청했다. 덱구성에 그럴싸한 서사적 내용과 조사자 선택에 대한 개연성도 틈틈히 재밌게 얘기해달라고 했다. 메타와 서사 두마리 토끼 모두 로랜드 처럼 애매하게 잡아버릴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니 일요일 밤 9시다. 아컴호러세계에도 언제나 파멸이 확정적으로 쌓이는 것처럼 현실세계에서도 월요일은 언제나 온다.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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