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럽고 길게 갈 것인가 고통스럽고 짧게 갈 것인가


하늘은 파랗게 높고 식욕도 한창 솟아오르던 어느 가을, 여느때와 다름없이 위쳐3 게롤트의 탄탄한 몸매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배가 거슬렸다. 한대 두대 쳐도 좀처럼 들어갈 기미가 없었다. 찐 것이다.


따로 시간내서 운동도 어렵고 주린 배와 심심한 입을 달래느라 간식과 밥, 밥과 간식 구분없이 입에 달고 사는 터라 하루가 다르게 몸이 부풀어 올랐다. 


굶는게 최고다. 하지만 저녁을 안먹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일단 회식 한 번이면 결심이 와르르 무너진다. 퇴근 후 보상심리에 더 챙겨먹고 싶은 마음도 든다. 점심을 줄이는 것이 그나마 쉬웠다. 간식도 안먹고 점심도 1/3만 먹고, 평생 이렇게 관리하며 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짧게 끝내는게 좋겠다. 


저녁에도 즐거움을 포기했다. 매일 1,500칼로리 먹으며 500칼로리씩 빼봐야 어느 세월에 지방 1kg을 태울 수 있을까. 1일 1닭도 못하는데 어차피 괴롭기는 매한가지다. 그나마도 한 번 삐끗하면 그 괴로움의 기간은 더더 늘어난다. 내 뱃살을 꺼내먹는다는 마음으로 1,000칼로리, 800칼로리, 600칼로리 어떤 날은 200칼로리. 근육이 빠지는 것이건 수분이 빠지는 것이건 어쨌든 무게가 줄어드는 것이 보이니까 동기부여도 더 잘됐다.


허기가 지면 자꾸 뭔가를 먹게 된다. 잠을 일찍 자기로 했다. 기운이 없어져서인지 속이 비어서인지 잠도 잘 온다. 플레이 해야할 게임도 산더미처럼 쌓이는데 할 의욕도, 기운도, 시간도 뱃살과 함께 없어진다. 그렇게 기다리던 싸이버펑크도 연기다. 차라리 잘 된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원래 보드게임을 참 좋아했다. 부루마블은 누구나 좋아하듯이 보드게임은 컴퓨터나 콘솔이 널린 요즘에 와서도 뭔가를 자극하는 뭔가가 있다. 하지만 가격도 가격이고 무엇보다 같이 즐길 사람이 없으면 되려 우울해지는 보드게임의 특성 때문에 섣불리 구매를 못했다. 


스팀의 테이블탑 시뮬레이터가 할인하는 것을 발견했다. 가격은 10,000원. 평을 본다. 친구가 없으면 사지 말라고 한다. 4팩을 한번에 사는 패키지도 있는 것을 보니 친구DLC를 구매하라고 부추기는 것 같아 보인다. 아무리 저렴한 가격을 꼬신들 선물할 친구가 없으면 무슨 소용. 


어쨌든 속는셈치고 한 번 샀다. 이것저것 만져보다 혼자 뭐하는 건가 싶어서 금방 싫증이 났다. 아마 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고 또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어느정도 허기에 익숙해졌다. 깔짝대던 운동 시간도 익숙해지면서 점점 더 늘기 시작한다. 재미로 운동하는 수준 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안하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유튜브는 귀신같이 내가 가장 최근 무슨 게임을 했는지 아는 것처럼 테이블탑시뮬레이터 관련 콘텐츠를 쏟아낸다. 1인플이 가능한 보드게임이 상당히 많다.


와 많다. 그리고 재밌다. 시간도 잘 간다. 롤드컵 바람에 롤도 잠깐 깔짝댔지만 역시 내 적성에는 안맞는다. 그냥 혼자 내맘대로 플레이하는 게임이 내 취향이다. 조금만 더 빼고 조금만 더 플레이 해보고 테이블탑 시뮬레이터+개별 보드게임으로 돌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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