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가 아닌 거대하기만한 도둑


좋은 도둑이 되기 위해 도둑길드에 들어갔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원래는 좋은 도둑들이 도둑길드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소매치기 확률도 낮아, 금고도 빨리 못 따, 상자도 안 들키고 못털어, 허구헌날 쌓이느니 현상금이다. 경비한테 두들겨 맞고 또 현상금이 더 쌓이는 악순환이다. 점점 가난해지는 이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해 도둑길드에 뭔가 뾰족한 수가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얘들도 별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뭐라도 해줄 것 같았지만 돈을 지불해야 한다..

삥을 누구에게 뜯기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현상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장물아비를 통해 지불할 수 밖에 없다. 그 돈이 아까우면 꼼짝없이 현상금이 시간에 따라 줄어드는 걸 기다려야 한다. 

이상한 거래가 아니고 야식을 배달한 것 뿐이다


요리사의 꿈을 품었지만 오른쪽 밑 현상금 때문에 이또한 몰래몰래 해야한다


그렇다고 제작에 또 소질이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재료 모으기도 귀찮고 뭐 하나 만드는게 귀찮을 만큼 성실성이 떨어졌다. 게다가 제작대 앞에라도 기웃거릴라 치면 현상금이 있다는 이유로 자꾸 쫓긴다. 기분 전환도 할겸 또다시 딴짓을 하러 간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갑자기 하늘에서 쇠사슬이 내려와 박히고 몬스터들이 튀어나온다. 몬스터만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디서 왔는디 몇 무리의 플레이어들이 삼삼오오 몰려든다. 갑자기 전투가 벌어진다. 나도 괜히 껴서 지팡이를 휘둘러본다.


쇠사슬이 나오는 구멍은 악당이 자신들의 세계에서 우리 세계로 넘어오는 포털이다. 막으면 일정 보상을 주고 경험치도 줘서 노가다에 굉장히 좋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굳이 레벨이나 보상을 빨리 챙길 필요는 없어서 한 두번 해봤다. 딱히 어려울 것은 없고 그냥 다른 플레이어들하고 우우우우 같이 몰려서 몇대 치다보면 보상이 턱턱 나온다.

모두 둥글게 모여 패주다보면 보상상자가 뚝딱


기분좋게 보상도 받았겠다. 진짜 다시 도둑길드로 돌아가려던 중에 중요한 것을 까먹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연합전쟁터에서 망치만 실컷 돌리고 왔지 정작 원래 목표로 했던 스킬라인 획득을 깜빡했던 것이다. 이동이 많은 ESO특성상 포털의 빠른 이동만으로는 커버가 안되기 때문에 연합전쟁 스킬라인을 얻어서 이동속도를 올려주는 스킬을 찍어주는 것이 좋다. 전쟁에 직접 참여할 필요도 없고 튜토리얼 1단계 'NPC한테 말걸기'만 해도 주므로 레벨 10찍자마자 바로 오는 것을 추천한다.


도둑길드의 쿠엔과 호흡을 다시 맞춰서 부잣집 구경하랴 사모님과 대화하랴 스토리에 슥 빠져들 무렵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도둑길드의 퀘스트는 다른 지역퀘스트와 달리 스토리만 민다고 퀘스트가 죽죽 진행되지 않는다. 반드시 도둑길드 랭크를 일정 이상 올려야 다음 메인 퀘스트가 열린다. 하루에 올릴 수 있는 랭크 점수도 제한되어 있어 역시 딴 곳으로 샐 수 밖에 없다. 역시 ESO다.

저택 침입, 집 참 좋다


관능적인 아르고니안메이드는 봤었는데 새 시리즈인가보다


일단 가장 첫번째 할 수 있는 딴짓은 도둑질 일퀘다. 단순히 시간만 보내는게 아니라 도둑질 연습도 하고, 길드랭크도 올리고, 돈도 벌 수 있다.

초보도둑에겐 거지가 가장 쉬운 먹잇감이다



일퀘를 다했으면 내일을 기약할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미리 포털도 뚫어 놓고 곳곳에 위치한 스카이샤드(3개모으면 스킬포인트1개 줌)를 수집한다. 가끔 길바닥에 자물쇠 달린 궤짝도 눈에 띈다. 아이템도 먹고 손재주 스킬도 올리고 좋다.

미발견 지역을 밝히고 다니는 것도 재밌다


제일 온라인스러운 콘텐츠는 역시 월드보스 잡기다. 무슨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월드보스에는 플레이어가 많이 몰린다. 애초에 혼자서는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지역이나 미리 밝혀두려고 월드보스가 있는 곳을 갔더니 누가 선빵을 칠지 눈치보고 있는 한무리의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헥토르!!!!!! 헥토르!!!!!!!! 처음 시작은 호기롭게 월드보스를 노려본다

;;;;

무식하면 용감한법. 모두를 믿고 먼저 쳤다. 스킬포인트가 적어서 아직 클래스의 잠재력을 완벽히 끌어내지 못하는 상태인지라 뭘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픽픽 죽어 나간다. 그래도 소울젬으로 바로 살아날 수 있으니 오기가 생겨서 오락실 동전 넣는 기분으로 계속 살아났다. 1:1이었다고 한다면 내가 죽는 순간 몬스터 피가 순식간에 다시 차겠지만 다행히 다른 플레이어들이 어그로를 계속 끌어준다. 개중 한명이 나름 고수가 있어서 싸움이 제법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쫄따구 몹들이 스폰돼서 다구리를 치니까 탱커?어그로꾼?이 버티질 못하고 나앉아버렸다. 든든한 보호막이 사라지고 나니 몬스터들은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파티아닌 파티 전원 끔살. 다들 그냥 가버릴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들도 오기가 생기는지 주변에서 월드보스를 노려본다. 딱히 서로 대화는 안했다. 어느나라 사람인줄도 모르고 뭐 공략을 아는 것도 아니라서 아까 겪은 실패에서 서로 뭔가를 배웠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말은 안했지만 쫄따구만 잡기로 마음 먹었다. 월드보스의 어그로가 나에게 오는 순간 바로 죽기 때문에 일단 월드보스는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아마 파티원1은 일단은 데미지보다는 어그로만 잘 끌기로 마음먹은것 같다. 아까는 안차고 있던 방패가 보인다. 다른 사람들도 뭐 이것저것 스킬을 연습하는 건지 허공에 연신 스킬을 난사한다. 준비는 끝난듯. 끄덕 끄덕. 방패맨이 월드보스를 먼저 쳤다. 결과는. 

"다들 고생하셨고요 즐겜요" 마음속으로..

결과만 보면 굉장히 간단한 것 같은데. 2~3번의 실패가 더 있었다. 클리어하고 정신 차려보니 내 역할은 어느새 힐러로 바뀌어 있었다. 여운이 남은 비교적 초보인 것 같은 우리 매지카 삼인방은 월드보스 시체를 앞에 두고 무언의 환호성을 질렀고 탱커는 몇걸음 떨어져서 그런 우리를 흐뭇하게 보는 것만 같았다. 연신 빽스탭을 날리던 도적나이트블레이드는 컨셉처럼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돌아다니면 딱정벌레가 꽁냥꽁냥하는 것도 볼 수 있다


아 또 도둑길드는 뭐 별거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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