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무기가 없음을 이때 알아챘어야 했다...

 

올 한해도 그냥 이렇게 가는구나.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심하게 지나가는 시간에 허무함이 밀려올 때 쯤 폐지줍는 게임에 대한 욕구가 반짝 고개를 든다. 

 

어둠땅도 나왔겠다 와우? 라이브러리에 켜켜이 쌓여있는 한번도 플레이 하지 않은 게임들을 두고 차마 돈내고는 게임하기가 어려웠다.

 

노가다 게임 불변의 진리 워프레임? 너무 불변이다. 한창 시작할 때, 빠져들 때, 접을 때, 복귀할 때, 또 삭제 할 때 워프레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앞으로 내가 뭘할지 너무 뻔해서 시작하지 않아도 벌써 지겨워졌다.

 

너드가 만든 아이템파밍 근본겜 피오이? 찍먹해봤고 접었고 다시 찍먹해봤다. 굳이 내가 제대로 해보지도 않은 게임에 대해 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 취향이 아니었다. 스킬트리가 어렵고 시즌이 다양하고 파밍 구조가 복잡하다고는 하지만 대량학살이 컨셉인 게임답게 전투가 너무 쉬워서 정붙이기 어려웠다. 같은 핵앤슬래쉬 장르여도 뭔가 다른 느낌인데 언젠가 시간이 되면 좀 다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눈에 띈 타이탄퀘스트 애니버서리 에디션. 오래전에 사고 너무 느린 레벨업에 찍먹하고 포기했다. 새 확장팩인 라그나로크와 합본해서 할인을 하느라고 스팀에서 보여준 듯 하다. 10년도 더 된 게임인데 아직도 비교적 최근에 확장팩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놀란 김에 재설치.

언제나 그렇듯 볼품없는 시작

 

왜인지는 모르지만 위기에 처한 마을을 일단 구해준다

 

이런 득템이 있기 때문일까

 

고대의 폐지 줍기는 어떨까?

 

예전에는 레벨 10까지 키우다키우다키우다 쥐꼬리만큼 오르는 경험치에 질려서 포기했다. 아마 주요 파밍 장소 반복 플레이를 염두에 둬서 경험치 테이블을 그런 식으로 만든 듯 하다. 싱글플레이에서 무슨 파밍노가다를 하냐는 내 입장에서는 견디기 힘든 인색함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경험치가 짰지만 느낌상 예전과는 다르다.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장팩과 함께 진행된 패치 덕분인지 아무튼 옛날과 달랐다. 몇 년 전에 버리고 떠난 기존 캐릭터를 서둘러 삭제하고 새 캐릭터를 만들었다. 

 

전형적인 폐지 줍기 게임이다. 단검 하나 차고 튜닉 한 벌 걸쳐 입고 알 수 없는 마을에 도착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괴물 때문에 곤경에 처한 마을 사람을 도와야 한다. 이 마을의 일이 끝나면 더 큰 마을에 메시지를 전달하러 가야한다. 높은 사람은 바쁘니까 만날려면 몇가지 일을 대신 처리해줘야 한다. 단순하고 식상하지만 이런 장르에 딱 맞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리스 신화와 연결 되어있어서 등장인물도 영화300(스파르타!)으로 유명한 레오니다스부터 비록 혼이지만 진시황까지 등장한다.

어떤 아이템이 나올까 두근두근 가슴이 웅장해진다

 

고전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미묘한 시점에 출시된 게임이고 더군다나 스팀버전으로 새롭게 출시된 만큼 UI와 조작이 충분히 익숙하다. NPC와의 대화 부분이 약간 불편하긴 하지만 어차피 대화가 중요한 게임이 아니다.

 

퀘스트가 많지만 크게 다룰 것은 없다. 스토리 진행을 위한 메인퀘스트와 피가되고 살이되는 일반 퀘스트로 나뉜다. 하지만 일반 퀘스트의 보상이 너무 짜서 그런지 플레이하다보니 중후반부터는 메인퀘스트 과정에서 얼결에 클리어할 수 있는 퀘스트 말고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딱히 무슨 스토리가 있거나 자체적인 재미를 줄 만큼 깊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옛날 게임이다 보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퀘스트 진행방식은 주우우욱 일직선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퀘스트 따라 갈길 가다보면 계속 새로운 마을과 지역이 나오고 새로운 몬스터도 나온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자유도가 중요한 장르는 아니지만 똑같은 일직선 진행이어도 발더스게이트처럼 어느 지점에서는 여러갈래로 쫙 이야기가 퍼져서 이것저것 해보며 게임의 볼륨을 즐길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것은 아쉽다. 똑같이 옛날 게임인데...

 

다만, 지루할 때쯤 확확 바뀌는 배경과 몬스터 그리고 BGM은 굉장히 좋았다. 어차피 또 몬스터 때려잡고 아이템이나 모을 것이지만 바뀔때만큼은 또 막 뭔가 새로운 모험이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을 '매번' 심어준다는 것이 신기하다. 드랍되는 아이템 종류도 다르니까 엄밀히 말하면 또 틀린 얘기도 아닌 것 같다. 

 

호랑이도 때려잡고, 설인도 때려잡고, 네안데르탈인도 패주고, 용족도 나오고, 악마도 나오고, 해골도 나오고 몬스터 종류가 정말 다양하다. 내가 제일 극혐하는 '공허의 시뻘건 칠흑 분노의 멧돼지'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보니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느린 레벨업과 낮은 드랍률과 맞물려 핵앤슬래쉬 장르답지 않게 전투가 마냥 쉽지만은 않은 것은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내 경우에는 게임하다 잠들 일이 없어서 마음에 들었다. 앞서 말한 다양한 몬스터의 패턴에 대응해야하고 머리 위에 별표가 있는 레어몹은 충분히 위협이 됐고 중간 보스와의 전투는 의외로 컨트롤과 전략을 요구한다. 몇 번 죽고 나서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아이템 파밍하기는 싫고 꼭 이겨야겠다며 창고로 돌아가 쌓아둔 아이템 목록도 다시 챙겨보고 상점에가서 비싸지만 강력한 소모 스크롤도 확인해보고 씩씩 대며 다시 달려드는 재미가 있다. 물약빨 장비빨로 무조건 이기거나 장비가 안되면 아예 이길 수조차 없는 스펙파워(드래곤볼 전투력 같은..) 싸움이 메인이긴 하지만 그 정도가 다른 게임에 비해서는 덜하다고 생각한다.

든든한 소환수와 함께

 

옛날 게임이라 타격감이 구리다는 평을 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충분했다고 본다. 물론 롤보다는 시공을 즐겼던 과거가 있는지라 '타격감'에 관해선 괜히 더 조심하게 되지만 여기 저기 터져나가고 날아가는 몬스터를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몹을 클릭해서 잡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아이템 파밍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좋아할 게임이다. 게임 난이도가 생각보다는 어려워서 아이템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캐릭터 성장과 포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적당한 아이템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액트를 미는 것 자체가 어렵다. 특히 직업까지 별로 강하지 않다면 좋은 아이템이 나올때의 희열은 더 크다. 내 경우에는 드림 이라는 1티어 직업을  아주 잘 선택했는데도 파밍을 게을리 하다보니 쉬운 구간이 없었을 정도였다. 

만리장성도나온다
공중정원도 나온다

 

크노소스 미궁도 나온다

 

고저차도 잘 구현되어있다

 

원래는 탑뷰 아이템 파밍 게임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는데 타이탄퀘스트로 완전히 인식이 바뀌었다. 싫어했던 이유는 맨날 아무런 긴장감없이 꾸벅꾸벅 졸며 뱅글뱅글 전체 공격하고 폐지줍고 또 마우스클릭, 같은 기술 반복, 도대체 뭘하는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같은 장르여도 이 게임에서는 돈의 귀중함, 아이템의 소중함, 무빙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던 점이 마음에 들었다. 타이탄퀘스트의 엔딩을 보고 용기를 얻어 허겁지겁 다시 POE를 설치하고 해봤는데 뭔가 아쉽고 별로 재미를 못느꼈던 걸 보면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차이가 분명히 있긴 한 것 같은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고전 게임을 좋아하는 취향이라든가 또 그놈의 닥터페퍼증후군이 도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스를 잡아도 매직템만 나오기 일쑤다

 

 

단점도 당연히 있다. 치명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경험치 테이블과 레벨 디자인이다. 요즘 게임과는 다르게 성장이 진짜 어마무시하게 더디다. 처음에는 버그라고 느꼈을 정도로 레벨업 속도가 말도 안되게 느리다. 싱글플레이가 메인임에도 노가다를 강요하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더딘 성장 때문에 이 게임이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듀얼 클래스(직업을 두개 선택하여 조합)도 빛이 바랜다. 직업의 특성과 개성을 즐기기 위해서는 일정 스킬 포인트 이상을 투자해야하는데 레벨업이 더뎌서 10레벨도 찍기 어려운(참고로 만렙은 75) 상황에서 직업 조합의 재미를 느끼기는 커녕 한 직업조차 제대로 즐기기도 전에 지친다.

 

여기에 더해 등장하는 몬스터의 레벨과 강력함이 들쭉날쭉해서 자신의 레벨에 비해 한참 낮거나 높은 몹과 계속 마주치게 된다. 드랍아이템의 템렙도 마찬가지여서 플레이어가 지금 어느 정도의 성장을 이뤄냈는지 헷갈리게 만든다.

 

다행히 게임 중반 즈음 와서 아이템 드랍률과 경험치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주는 모드를 알게 됐다. 스팀 창작마당에서 받을 수 있다. 여러가지 버전이 있는데 내 경우에는 LOOT+ & EXP*4 모드를 받았다. 경험치가 4배나 들어온다고해서 엄청난 광렙을 할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 하다보면 종종 누을 정도로 게임이 엄청 쉬워지지는 않는다. 아이템 드랍률도 뭐 말도 안되게 아이템이 쏟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웬만하면 적당히 모드를 활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바닐라는 정말 너무 극악해서 사람에 따라서는 게임에 재미를 붙이기도 전에 지겨워진다. 심지어 내 경우에는 모드를 깔았음에도 노말 엔딩을 보는 시점에서도 반지 두개는 일반템 보다 한단계 위인 매직템(노란색)에 불과했을 정도로 모드가 엄청난 드랍률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게임의 프레임 드랍도 고질적인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스팀 평가에 어떤 분이 해결책을 남겨두셔서 이 부분에서는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작업관리자 - 세부정보 탭 -  TQ.exe - 선호도설정 - CPU0 체크 해제. 그런데 게임을 실행시킬 때마다 매번 해줘야 한다. 그걸 모르고 '오 이제 쾌적하네'라고 생각했었다. 프레임드랍도 심리에 영향을 많이 받는 듯. 

 

돈, 포션, 참은 A키를 눌러서 한번에 먹을 수 있다. 일일이 클릭하지말 것. 중반까지 이걸 몰라서 일일이 클릭하느라 게임을 접을 뻔했다.

 

1회차는 드림-워페어로 마검사 컨셉을 잡았는데 2회차는 엘리멘탈리스트로 순수 마법사 컨셉으로 플레이 중이다. 아 갑자기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떠올랐다. 이 게임에는 양손무기(지팡이류 제외)가 없다. 쌍수 아니면 검방 조합이다. 이것이 내가 2회차에는 그냥 순수 마법사를 플레이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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