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닐라에 대한 이야기


워낙 RPG를 좋아하는 터라 출시되자마자 구입했었다. 하지만 스토리 초반부를 진행하다 피의남작을 만나는 부분 쯤에서 취향에 맞지 않아 접었다. DLC계의 모범교본이라 불릴정도로 혜자스러운 하츠오브스톤, 블러드앤와인도 구매하지 않고 완전히 잊고있을 정도였다.
사실 위쳐3의 단점은 매력에 비하면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접거나 말거나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명작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다만, 역시나 주식처럼 마이너한 내 게임 취향에는 매력보다는 단점이 더 눈에 들었던 것 뿐이다.


무서운 예니퍼

무서운 예니퍼와 짓궂은 친구

아쉬운 전투


위쳐3는 스토리 위주 게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는 다소 재미없어도 괜찮다.


라고 생각하기에는 전투의 비중이 높다. 스토리 전개부터 위쳐라는 직업에 맞게 웬만한 일은 전투로 시작해서 전투로 끝난다. 피의 남작 퀘스트에서 악령을 다수 상대하는 부분 즈음에서 피로감이 확 밀려왔던 기억이 난다.


빙글빙글. 퍽.퍽. 실수로 맞으면 보호막(쿠엔). 빙글빙글. 퍽.퍽.


어떤 몬스터건, 적이건 전투 흐름은 대동소이하다. 전투 자체는 절대로 쉬운 편은 아니라서 초반에는 포션을 먹는다, 기름을 바른다, 약점을 파악한다, 아이템을 맞춘다는 식으로 해결방법을 찾아가며 재미를 보지만 게임에 익숙해지고 나면 모두 귀찮은 일이 될 뿐이다.

전투와 별개로 두근 거릴 때가 있다.

몰려오는 조급함


스토리나 밀자고 마음먹으니 조급함이 밀려온다. 엔딩을 빨리 보고 싶은데 방대한 볼륨이 놓아주질 않는다. 볼륨도 크지만 지루했기 때문이다. 퀘스트 구조는 대부분 A, B, C순서로 따라가는데 A는 a를 해결해줘야지만 B에 대해 알려주고 B를 찾아가면 b를 해줘야 C에 대해 알려준다. 아주 기본적인 구조긴 하지만 지나치게 반복적이고 지름길이나 자유도도 없고 전투가 재미없으니 과정에서도 지루함이 밀려왔다. 더 큰 함정은 때때로 b를 해결하러 갔더니 Y가 있어서 또 y를 도와줘야하는 경우도 있다는 거다.

세상은 넓고 할일도 많구나

키이라를 좋아했었는데 정체를 알고나서 자꾸 얼굴이 겹쳐보여..









2. 2020새해를 인핸스드 에디션(W3EE)과 함께


바닐라와의 차이는 굉장히 많지만 그 중 인상 깊은 부분만 적었다.
모드 관련 잡다구리한 부분은 2회차가 끝나고 나면 한 번 정리해볼 생각이다.

귀엽고 예쁜 친구들



재밌게 어려워졌다


앞서말했다시피 내기준 바닐라의 전투도 결코 쉽지는 않았다. 다만 재미없게 어려웠다. 늘어나는 피통만큼 성장하는 캐릭터만큼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는 전투 시간만 길어질 뿐이었다.

예니퍼와의 뱃놀이



EE의 경우 기본적으로 타겟팅 시스템이 오토타겟에서 메뉴얼타겟으로 바뀌었다. 화면 중간에 크로스헤어가 있는 것 마냥 마우스를 돌려가며(설정에 따라 움직임 방향) 때려야 한다. 이로인해 플레이어가 컨트롤해야할 일이 크게 늘었다.
기존에는 방향도 얼추 잡아주고, 거리도 잡아줬지만 EE에서는 플레이어가 모두 해야한다. 실제로 때릴 수 있는 거리까지 이동하고 때리든가 새롭게 추가된 중, 장거리 공격키를 이용해서 돌진 공격을 해야한다. 멍하니 마우스만 눌러서는 허공에 칼질만 할 뿐이다.

우리동네 해결사 위쳐아저씨

외로운 위쳐 혼자서

외로운 위쳐 술에 취해 혼자서



순식간에 죽고 순식간에 죽인다. 데미지는 늘어나고 피통은 작아졌다. 처음에는 주로 내가 순식간에 죽는다. 길게 얘기할 것 없이 그냥 이것만으로도 긴장도가 확 높아졌다. 쿠엔 효과도 피해를 일부만 흡수하는 것으로 바뀌어서 맞지 않아야할 이유가 늘었다.


피할거면 진짜로 피해야 한다. 튜토리얼부터 굉장히 당황했다. 베스미어삼춘의 공격을 분명히 피했는데(바닐라 기준으로) 번번히 뚜까맞았다. 빨리, 더 빨리, 늦게, 더 늦게, 타이밍을 조절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정답은 더더 빨리 피해야만 했다. 적의 공격범위로부터 실제로 벗어나야 회피가 된다. 바닐라와 같은 무적판정 회피는 적의 공격범위(정면 90도 뿔)안에서 회피할 때만 그나마도 제한적으로 발동한다. 적의 공격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진짜 회피는 안전하지만 반격이 어렵고 공격범위 안에서의 회피는 타이밍만 잘 맞추면 무적판정과 함께 공격타이밍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실패하면 데미지도 입고 공격타이밍도 놓친다. 소설 속의 게롤트는 춤추듯이 싸웠고 바닐라의 게롤트도 춤추듯이 뱅글뱅글 돌며 싸우지만 EE의 게롤트는 싸우다 춤을 추면 안된다.


그래서 막기를 활용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반격을 잘써야 한다. 막기도 회피와 마찬가지로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적이 공격할 때 막으면 반격이 나가는데 플레이어 컨트롤에 따라 각각의 효과가 다른 발차기, 몸통박치기, 회피공격이 발동 된다. 반격이 성공적으로 발동되면 막기가 불가능한 공격도 데미지를 크게 경감시킬 수 있다.


적의 공격성과 방어성이 증가됐다. 전투AI라고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행동패턴은(뒤로 돌아 간다든가 엄폐한다든가 아이템을 사용한다든가 등등) 크게 변경된 것 같지 않아서다. 하지만 이제 적은 더이상 때릴까 말까 댄스만 추는게 아니라 진짜로 가차없이 팬다. 웬만한 공격은 막거나 피한다. 허공에 칼질 했을 때의 당혹감을 자주 느낄 것이다.


전투자원 관리도 잘해야 한다. 피, 원기, 스태미나, 아드레날린이 모두 변경되었다. 이중 스태미나 변화가 가장 크다. 다크소울류 게임처럼 모든 행동에 스태미나가 소모된다. 적은 몰려오는데 회피나 반격할 스태미나가 없다? 바로 죽음이다. 스태미나를 아껴야 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행동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대충 아무렇게나 플레이하면 혼자 헉헉대다 죽는다. 그리고 더이상 전투 중에 음식을 입에 우겨넣는 것만으로는 피가 차지 않는다. 피가 닳으면 실제처럼 전투자원의 회복속도가 느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가까워진다.

버그 때문인지 피가 닳으면 양팔을 든다




(여기서 잠깐)
D&D에서 HP가 1만 남은 전사는 어떤 상태일까? 현재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사지멀쩡하고 있는 기술 없는 기술 다 쓰며 날라다니지만 바늘(?)같은 것에 콕 찍히기만 해도 픽하고 죽어버리는 식으로 표현된다.
내가 떠올리는 장면은 다르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 검조차 들 힘이 없어서 벽에 기댄채 연신 숨을 몰아쉬어가며 '드루와'를 외치고 아드레날린빨로 마지막 반격기회를 노리고 있는 죽기 직전의 전사가 떠오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W3EE의 전투자원 관련 변경사항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게임 내 요소를 다 활용해야 한다. 적응되기 전에는 이걸 깨라고 만든건가 싶을 정도로 욕지기가 나올 수도 있다. 변태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기는 하다.(옵션으로 조정 가능)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잊혀졌던 포션도 꺼내고 기름도 꺼내고 원거리 무기도 다시 손질해야 한다.



정말 재밌게 플레이 했다. 피의남작 악령 부분은 거의 50번은 넘게 트라이 한 것 같다. 죽을 때마다 안타까운 비명을 지르면서도 계속 도전했다. 이 과정에서 지루함이라는 단어는 완전히 잊혀졌다. 매 전투가 중요하다보니 오히려 이제야 스토리가 더 눈에 들어왔다. 다음 전투의 이유를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이제야 게임의 볼륨이 지루함이 아닌 볼륨으로 다가왔다. 거의 메인퀘스트만 집중적으로 했는데도 플레이타임은 60시간에 육박했다.


천신만고 끝에 엔딩을 봤다. 2회차를 바로 켰다. 기다려라 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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