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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관에서 오는 특유의 분위기와 달리 게임 자체는 여느 핵앤슬래시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2. 처음에는 캐릭터와 아이템이 다양한 것 같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3. 1과 2


척 보면 딱 전형적인 느낌이다



이제와서 보니 나는 핵앤슬래시 장르를 싫어하는 것이었다


핵슬 장르를 꽤나 플레이 해봤기에 이런 종류 게임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디아블로1부터 2, 3(잠와서 확장팩은 안함), 토치라이트, 패스오브엑자일(이하POE), 타이탄퀘스트를 플레이하고나서 돌아보니 엔딩이라고 제대로 본 것은 디아블로3와 타-퀘 정도였다. 핵슬 장르를 좋아한다는 것은 내 착각이었던 것이다.


가벼운 마음에 시작하지만 빠져들기는 어렵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애초에 게임에는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스탯뻥튀기를 통한 난이도 조절은 매우 매우 매우 싫어하는 취향을 가지고 있는 터라 핵슬 장르를 가까이 하기에는 어려웠는데 그놈의 '뭔가가 쌓이는' 게임이 가끔 땡기는 시즌이 있어 그럭저럭 플레이 해 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듯 핵앤슬래시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부정적 인식을 깔고 가는 터라 그림던 리뷰에서는 장르 자체의 특징을 다루는 것은 최소화하고 그림던이라는 게임 자체에 대해 좀 더 다뤄보려고 했다. 그러나 막상 그러고보니 크게 다룰 것이 없다. 


처음엔 글이 굉장히 쉽게 써질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어렵다.

시체의 산



POE 말고 그나마 그림던을 더 오래 플레이한 이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POE도 한번 깔짝 거려봤다. 극초반만 키우고 접었다. 처음부터 앞으로 뭘하게 될지 그려지는 반복 플레이가 성향에 맞지 않았다. 강력한 스킬 하나 정해서 그 스킬을 강화하고 계속해서 난사하고 파밍하는 것 그리고 스킬을 더 강화하는 것은 취향이 아니었다. 양손무기, 육중한 중갑을 좋아해서 전사를 택했는데 몇날 며칠이고  땅만 찍어재끼며 돌아다녀서 쉽게 질렸다. 

총이 나온다


핵앤슬래시도 RPG기 때문에 컨셉 플레이를 하고 싶었다. 중갑 두른 흑마법사, 양손 둔기를 휘두르는 마법사, 쌍권총 방화광 등등 그림던에는 클래스를 조합한 멀티클래스 시스템을 앞세웠기 때문에 뭔가 내가 원하는 플레이가 가능해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가능했다. 표면상으로는 가능했다. 내가 엔딩을 본 캐릭터는 벼락과 양손 둔기를 휘두르며(샤먼) 역병과 저주를 흩뿌리는(오컬티스트) 클래스였다. 처음에는 떨어지는 아이템에 맞춰 스킬도 바꿔가며 다양한 방식으로 진도를 나갔기 때문에 지루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양손둔기를 휘두르다 지겨우면 벼락을 쏘고 벼락도 지겨우면 소환수도 끌고 다녔다가 펫이 너무 귀찮으면 여기저기 도트데미지를 날리는 캐스터로도 변할 수 있었다. 아주 적은 돈만 지불하면 스킬초기화가 가능한 점이 큰 도움이 됐다.


접두사+접미사식 아이템 시스템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이템에 따라 플레이 방식이 많이 바뀌어서 파밍의 재미도 상당했다. 다음에 키울 캐릭터를 위해 쓰지 않는 초반 아이템도 창고에 고이 모셔둘 정도였다. 레벨 20쯤 키웠을 때 양손도끼로 잡몹을 일일이 베는게 너무 귀찮았다. 그러던 중 작은 요술방망이가 떨어졌다. 


'데미지 200을 흡수의 표식 스킬에 추가'


바닥에 마법진을 까는 흡수의 표식 스킬은 데미지가 너무 꾸려서 안썼는데 요술방망이를 끼고 써보니 신세계였다. 당장 모든 스킬과 템을 흡수의 표식에 맞게 바꾸고 파밍도 새로 하면서 20레벨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세계관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러브크래프트류의 퀴퀴한 냄새, 서부시대 감성, 망해버린 세계의 절망감, 공권력 붕괴에 따른 자력구제의 불안감,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기준이 모호해지는 혼란감 등등 마음에 드는 것들을 잘 버무려 놓았다. 

죄수를 대상으로 한 광기의 실험실

광신도들의 핏빛 제단


덕분에 적도 맨날 악마만 나오는게 아니라 인간(미친 사람, 광신도, 경쟁집단), 괴물, 짐승 가릴 것 없이 팩션이 여러 갈래로 나뉘며 서로 개싸움을 벌인다. 똑같은 괴물끼리 서로 적대하면서 필드상에서 치고박고 싸우는 모습을 보며 갓겜!을 외쳤다.


근데 왜 서둘러 게임을 껐나


본편 엔딩을 봤다. 아니 엔딩을 볼 수 없었다. 엔딩이 없었기 때문이다. 컷신으로 이뤄진 영상이 나오지만 엔딩이라기 보다는 확장팩의 인트로 느낌이다. 확장팩을 샀기 때문에 나온 것인지는 몰라도 만약 이 컷신마저 없었다면 굉장히 당황스러울 뻔 했다. 

초반 컷신

초반 분위기


세계관의 스토리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연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배경이 신기한 것도 초반뿐이고 점점 진행할수록 힘이 떨어진다. 스토리의 빈 공간을 메워주며 감초 역할을 하던 일지로 대표되는 다양한 문서 자료는 후반으로 갈수록 흥미를 끌어내지 못한다. 처음에는 이런 세상에서 일어날 법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 위주라서 또다른 재미를 주었는데 개발사도 귀찮았는지 후반부에는 그냥 넋두리, 광신도의 미친 소리, 기도문 같은 것이라서 전혀 읽는 재미가 없었다. 


어린 딸, 엄마, 엄마의 썸남이 피난가다가 다른 피난민 무리를 만나고 묘한 공포가 느껴져 어쩔 수 없이 식량을 나눠준다. 길도 막히고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게 되고 식량은 떨어진다. 엄썸남은 언젠가부터 엄마와 어린 딸에게 고기를 공급한다. 알고보니 어린 딸을 미끼로 피난민을 유인해서 죽이고 있었던 것. 다른 피난민에게는 잘못걸려서 썸남은 죽어간다. 너무 오래 살아남아 식량을 축내니까 엄마는 '결단'을 내린다. 결단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아무런 느낌없이 실행할 수 있어서 자신에 대한 혐오도 느끼지만 그 느낌도 희미해지면서 마무리.


이런 일지를 읽으며 세계에 빠져들다가 '오~ 경배하라 피의 목욕을 하자~' '온세상 사람 다 죽여서 우리 신 숭배하자~' 이런 글만 계속 나오면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다.

가끔 피식하는 대화문도 나온다


컷신이 게임 시작과 끝에만 있어서 시각자료가 굉장히 부족한 점도 세계관의 발목을 잡는다. 나름 중요 퀘스트를 깨도 아무것도 없다. !와 ?로 처리될 뿐이다.  뭔가를 해냈다는  중간 체크포인트도 없이 곧바로 다음 퀘스트!, 그나마도 내용도 앞과 똑같은 노가다성 퀘스트만이 플레이어를 기다린다. 아무리 메인퀘(진도빼기)와 사이드퀘(성장을 위한 노가다 지원)가 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컷씬하나 동영상하나 있었다면 느낌이 달랐을 텐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결국엔 다 똑같았다. 다른 핵슬 장르의 게임과 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느낀 순간 급격히 흥미가 사라졌다. 다양한 클래스와 그 클래스 간 조합을 통해 여러 방식의 플레이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캐릭터 내에서 할 수 있는 플레이는 POE에 비해 다양했지만 게임이 제공하는 플레이 방식은 매우 제한적이다.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도 앞선 캐릭터의 플레이와 다를 것이 없다. 달라지는 것은 주력 데미지 속성과 스킬이펙트 뿐이다. 거의 모든 직업이 버프, 평타 강화, 적당한 난사형 광역 스킬을 활용한 플레이를 반복하게 된다. 엔드 콘텐츠는 맛도 못봤지만 기존 플레이에 여태까지 크게 활용할 기회가 없었던 저항깎이 스킬이 추가되는 데 그칠 것이라 생각한다.

이아이템의 옵션은 신박했다. 실제로 '그것'을 던진다

초반엔 플레이 방식을 확 바꿔주던 아이템도 실망스럽다. 결국에는 데미지 속성이 다르거나 특정 스킬에 추가 데미지를 부여하거나 특정 스킬이 발동되는 아이템 뿐이다. 다른 아이템이 아니라 '더 강한' 아이템 파밍 밖에 남지 않는 것이다. 이외에도 별자리시스템, 아이템강화 컴포넌트, 증강제, 평판 노가다 등등등 명칭만 다를 뿐 다른 게임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결국 부캐 육성을 포기했다.

첫 전설템인데 큰 느낌은 없다



진짜 재미를 모르네


아이템 파밍, 빌드 완성 등을 보면 핵슬 장르는 퍽퍽 쓰러져 나가는 적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높다. 내 기준에서는 게임의 난이도 보다 흥미를 붙이는 난이도가 상당했다. 누군가는 본격적인 파밍단계부터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빌드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재미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 단계까지 이 초반의 역경을 참아낼 자신이 없다. 그래서 진짜 재미를 모르고 자꾸 찍먹하게 되는 것 같다.

서부시대 느낌


보더랜드, 디아블로, 디비전 등등등 수많은 파밍류 게임의 재미를 모르겠다. 하는 행동은 같은데 데미지 숫자가 10일 때보다 100일 때, 1,000일 때, 1,000,000일 때 그 재미가 10배, 100배, 100,000배가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10일 때 재밌던 게임도 100으로 넘어갈 때는 반복되는 플레이가 지겨워 접었다. 10일 때부터 재미없는 게임은 중간에 플레이를 멈췄다.


발더스게이트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몬스터는 보스도 아니고 리치였다. 무슨 수를 써도 절대로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포기했다. 그런데 우연히 들어간 비밀공간에서 '데이스타'라는 태양빛 흘러넘치는 롱소드를 파밍할 수 있었다. 갑자기 오랜시간 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트라우마 리치가 생각났다. 리치도 아무리 세봐야 결국 언데드인지라 태양검의 괴랄한 옵션 앞에 바스라질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스탯뻥튀기가 아이템 파밍의 더 큰 보람일 수 있지만 내 경우에는 다양한 플레이 방식과 독특한 개성이 있는 아이템(말하는 검이라든가)에 더 애착이 간다.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다. 한방, 많아야 두방만 치면 죽는 적들을 보며 왜 아이템을 더 파밍해야하는지. 아이템을 더 모으고 캐릭터가 더 강해지면 뭐가 달라지는지. 최근에 던전앤파이터 방송을 보았다. 압도적인 데미지로 보스를 순삭하고 무심한 표정으로 던전 재도전을 누르고 던전 클리어를 반복하는 스트리머를 볼 수 있었다. 고인물을 넘어선 수준이었던 것 같은데 딱히 재밌어 보이진 않았다.


'게임은 만렙부터' 라든가 엔드 콘텐츠 전에는 재미를 찾지 말라는 말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입장에서는 돈을 지불했는데 재미도 없는 노동까지 더 해야 그 잘난 '재미' 좀 볼 수 있는 것인지. 그럴거면 재미없는 부분은 과감히 도려내거나 스킵 기능을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토탈워와 같은 대부분의 전략시뮬게임은 귀찮거나 너무 쉬운 전투는 스킵할 수 있는 자동전투 기능을 제공한다. 핵앤슬래시에서도 자동전투 기능을 제공해서 파밍결과만 보여주면 어떨까 싶다. 지금과 크게 다를 것은 없어 보인다.



그림던을 마치고 다시 한번 더 POE를 설치했다. 그림던 덕분인지? 꾹 참고 밀어보면 내가 몰랐던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번 또 도전! 해보고 나면 내 취향을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게 될 것 같다.


다행히 이번에 할인해서 구매했기 때문에 타격은 덜하지만 본편만 살껄하는 후회가 막심하다. 타-퀘와 그림던 중 무엇을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공짜로 주는 쪽을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굳이 사야한다면 돈을 쓰지말고 공짜게임인 POE를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1/7 추가)



안하겠다! 마음먹었지만 이런 게임 특성(?)상 또 안하면 슬금슬금 생각이 난다. 돈이 아까운 것도 있었고 POE는 아직 새시즌이 열리기 전이라 시간도 있고 해서 깨던거는 마저 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퀘스트 완료보상으로 준 전설 방어구도 현재 빌드와 딱 맞아서 기분이 썩 좋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앞서 플레이 했던 전작인 타이탄 퀘스트에 비해서 엄청 더 재밌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경험치 테이블, 퀘스트 확대, 다양한 문서자료, 타격감, UI, 편의성 등 개선된 점도 있었지만 BGM의 경우에는 다양하지 못해 오히려 퇴보한 점도 있었다.


지도 보기와 같은 기능은 여전히 전작과 마찬가지로 불편하다. 전체 맵을 구분없이 한번에 다 보여주는데 캐릭터와 거리가 있는 영역은 아무런 표시가 뜨지 않아서 주요 포인트가 어디인지 외워두거나 인터넷에 맵을 펼쳐둬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세계관은 그림던 쪽이 압도적으로 마음에 들었지만 위기에 빠진 세상을 구하는 전형적인 스토리라 특출난 점은 없다. 


클리어한 확장팩은 Ashes of Malmouth인데 가격대도 있고 인트로 컷신도 있어서 엄청난 모험이 펼쳐질거라 기대했지만 본편과 마찬가지로 침략한 도시를 구하는 평범한 이야기다. 다만 그 위기의 근원인 괴물이 엄청 그로테스크해서 마음에 들었다. 육체조형사라니! 게다가 고기공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스토리보다도 새롭게 추가되는 게임 요소들이 더 돋보이는 확장팩이 아닌가 싶다. 확장팩 주요 변경점은 클래스 추가, 별자리 추가, 아이템 추가, 레벨제한 상향 등이다. 따라서 본편을 재밌게 즐긴 경우에만 구매를 고려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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