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발더스게이트의 사레복이 좋다. 신이 되겠다는 그의 야망, 야망을 이루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 상황을 만드는 지략, 때를 놓치지 않는 결단력, 필요할 때 정면에 나서는 대담함, 거친 이종족을 다루는 카리스마 등등 주인공 보정으로 떡칠한 플레이어만 아니었어도 그는 꿈을 이뤘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도 단점이 있다. 육중하고 탄탄한 몸, 사람을 압도하는 중저음의 보이스에 어울리지 않게 듬직한 탱커가 아니라 딜을 추구하는 양손검 전사다. 

그에 반해 코간 블러드액스는 작은 악당이다. 항상 입에는 욕을 달고 살고 온갖 못된 짓은 다하고 있지만 탱커다. 버서커 답게 광분 상태로 완전히 돌아버릴 때도 있지만 작은 의리에 연연하는 평소 모습답게 아군을 해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겉으로는 혼돈악 성향을 달고 있지만 괴롭히더라도 내가 괴롭힐거라며 약자를 괴롭히는 자를 혐오하고 약자를 지키려고 한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탱커로 진로를 선택한 이유일 것이다. 대놓고 탱커라서 원거리 공격을 못하는 척 하지만 불리할 땐 슬그머니 허리춤에서 작은 손도끼를 꺼내 투척하는 모습에서 그의 악랄함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마냥 밉지만은 않다. 그가 탱커이기 때문일 것이다.

외모, 성향, 종족, 성별 불문 탱커에게는 뭔가 의지하고 싶어 진다. 강인한 오크도 왜소한 노움의 등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만드는 마성과 같은 매력이 분명 탱커에게 있는 것이 틀림없다.

헛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본격 헛소리에 들어가보자. MMORPG에서 딜러는 찬밥 신세다. 필요 이상으로 수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힐러와 탱커는 환영 받는다. 실제 필요한 만큼 돌아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든-든


일단 여기서 바로 이유가 나온다. 탱커는 언제나 환영 받는다. 힐러 보다 더 환영 받는다. 보통은 탱힐로 같이 묶이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또 힐러보다 탱커의 수가 더 적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사 탱크(페이크 탱크)도 가끔은 쓸데가 있을 정도다. 안 그래도 뉴비가 환영받는 게임인데 탱커까지 한다면…

시간이 절약 된다. 웬 뚱딴지 같은 소리가 아니다. Eso에서는 인스턴스 던전 콘텐츠를 돌려면 그룹원을 찾아 큐를 돌려야 한다. 딜러는 보통 5분 이상 대기하는 경우가 많다. 힐러도 1~2분을 넘길 때가 있다. 그나마 가장 가볍고 사람들이 몰리는 랜노(랜덤 노말 던전)가 이렇다. 특정 던전으로 가야하는 플렛지(서약퀘)의 경우, 난이도를 노말에서 베테랑으로 올리는 경우 아무래도 대기 시간은 더 길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탱커는 칼같이 매칭이 잡힌다. 딜러나 힐러 할 때는 1분 정도는 기본으로 기다렸지만 탱커를 하고나서부터는 30초만 넘어가도 '버근가?' 하면서 큐를 다시 돌려볼 정도로 기다리는 일이 좀처럼 없고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고평가 돼 있다. 주식을 하면서 평생을 상투만 잡으며 고평가의 폐해만을 겪으며 살아왔지 그 이득을 누려본 적은 없다. 탱커를 키움으로써 고평가의 수혜자가 될 길을 열 수 있다. 탱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가. 

 

던전에 대해 잘 안다. 그룹원을 책임질 정도로 실력이 출중하다. 통솔력이 있다. 리더다. 

 

오히려 이런 이미지가 부담돼서 선뜻 탱커를 키우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eso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앞서 말했다시피 유사탱커도 환영받을 때가 있을 정도로 뉴비가 진행하는 콘텐츠의 경우 진입장벽이 전혀 높지 않다. 그냥 방패랑 중갑만 걸쳐도 큰 도움이 된다. 딜러보다 결코 부담이 더 크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조금만 실수해도 딜량이 딸려도 툴툴 거리는 그룹원들의 투덜거림을 듣는 딜러보다 부담이 더 적을 수도 있다. 실수로 탱커가 죽어도, 어그로가 튀어도 역전의 용사인 딜러와 힐러는 오히려 그런 도전에서 즐거움을 얻으며 탱커를 격려해주기 때문이다. 적은 노력 대비 큰 성과, 모두가 원하는 길 아닐까. 욕먹고 눈치밥 먹으며 경험 쌓기 vs 따뜻한 격려 속에서 성장하기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당연히 후자다.

원하는 콘텐츠에 헤딩하기가 좋다. 의외로 오랜 시간 게임을 했다고 하는 사람도 트라이얼(12인 던전) 경험이 적은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면 MMORPG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대규모 던전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기회만 주면 잘 할 수 있는 딜러는 넘쳐난다. 어려워서 깨지 못하고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탱커가 없어서 그룹이 만들어지지 못할 뿐이다. 자신이 탱커라면 그룹을 찾아 LFG(루킹 포 그룹~)할 필요없이 LFM(루킹 포 멤버~)를 외치며 그룹을 만들어 버리면 된다. 역전의 용사인 딜러와 힐러들이 마구 지원할 것이다. 일단 11명의 용사를 모았으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실력이 출중하지 못한 탱커라면 베테랑 트라이얼에는 도전하기 어렵고~ 이런 이야기를  하며 뉴비에게는 탱커를 추천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뉴비가 당장에 벳트라이얼 갈 일도 없고 갈 때 쯤이면 이미 수많은 헤딩을 거치며 경험이 쌓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여기까지 말했는데도 선뜻 탱커에 손이 가지 않는다면 원래 계획대로 101가지 이유를 대도 어차피 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글을 줄인다. 탱커를 해야하는 이유가 아니라 해도 되는 이유라서 본문에서는 뺀 내용을 하나만 더 추가하고자 한다. 

지나가다 찍어본 오할탈모


탱커가 낮은 데미지 때문에 1인 솔플이 어려워서 뉴비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옛날에는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아이템 세트 효과가 다 좋아서 그런지 크게 솔플이(지역퀘스트, 미니 던전 등) 느리다거나 하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물론 1인 아레나의 경우에는 베테랑 난이도는 탱커로 클리어 하기 거의 불가능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취지가 혼자서 탱딜힐 다 하는 올라운더 경험을 해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딜러건 힐러건 어차피 마엘스트롬, 바테슈란 같은 1인 아레나 베테랑을 클리어 하기 위해서는 아이템, 스킬, CP다시 다 짜야하기 때문에 탱커만 유독 불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딜 쪽에 조금 더 비중이 높다 보니 리뉴얼한 캐릭터에 딜러나 힐러가 좀 더 적응하기는 쉽다. 그래서 막힐 때 쯤 부캐로 딜러를 키우면 된다. 어차피 업적에 따른 보상은 전 캐릭터가 공유된다. 보통은 딜러를 본캐로 키우고 부캐로 탱커를 키우라고 하는데 탱커가 취향인 사람의 경우에는 탱커 먼저 키워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속도는 더 빠를 수 있다.

탱커에 너무 겁먹지 말고 헤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덕분에 내 딜러 부캐 매칭 시간도 단축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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