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에 '이것' 넣어 먹으면 절대 안된다.

 

에스프레소는 원래 쓴 맛에 먹는 거고 쓴 맛을 즐길 줄 알아야 진짜 커피를 마실 줄 아는 것이라고 오해했다. 하지만 웬걸. 쓰디쓴 에스프레소에 달달한 각설탕을 퐁당퐁당 넣어 마시고는 마지막에 미처 녹지 않고 남은 커피향 짙게 밴 설탕 엑기스(?)를 퍼먹는 것도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방법의 하나라고 한다.

평양냉면도 그렇다. 섬섬하게 밍밍하게 먹는 것이 정답인 줄 알았다. 겨자는 무슨, 식초라도 한바퀴 칠라치면 괜시리 주변의 눈치를 봐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손에 청포도맛 소주병을 든 채로 '인생이 달아서 소주의 쓴 맛을 제대로 즐길 줄 모른다'는 핀잔을 듣고 시무룩해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분한 마음에 소주에도 스태비아, 사카린 같은 감미료가 이미 포함되어있다는 것을 찾아내고는 따져들어가봐야 역시 아무래도 '청포도'의 임팩트가 너무 크다.

위쳐3 ee 모드에서도 느끼긴 했지만 바닐라에서 제대로 살리지 못한 맛을 모드가 제대로 살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모드를 재밌게 즐기면서도 '바닐라 아닌데.. 바닐라 아닌데.. 모드를 깔고서 게임을 제대로 즐겼다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갈 때가 있다. 그러면 갑자기 뭔가 오리지날리티가 훼손 된 걸 뭣도 모르고 즐기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조용히 게임 종료 버튼을 누르게 된다.

요즘에 주로 플레이하는 게임은 햄탈워2다. 유명 게임 답게 창작모드가 활발하다. 양질의 모드가 쏟아져 나오지만 UI 관련 외에는 모드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아직 모드에 기웃 댈 만큼 고인물이 아닌 것도 있지만 왠지 모드는 사파, 변칙, 알못의 이미지가 있다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 손이 안간 것이 더 큰 이유다. 

꾹 참고 바닐라를 즐겼다. 불편해도 참았다. 인내는 쓰고 플레이는 고통스러웠지만 게임을 진정 즐기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엘더스크롤온라인이 생각났다. 신나게 이 모드 저 모드 깔면서 재밌게 플레이 하지 않았던가. 이상하게 그때는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한라산 소주가 서울에 상륙하고 얼마 뒤 한라토닉이라며 소주에 토닉워터와 레몬을 뒤섞은 녀석이 유명세를 탔지만 아무도 술알못이라며 뭐라고 하지 않았다. 기호식품이나 콘텐츠에 있어서 오리지널, 바닐라, 순정의 가치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만 재밌고 좋으면 그걸로 된 거다.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법을 어긴 것도 아니다. 갑자기 모드를 허겁지겁 깔았다. 약간은 지쳐가던 플레이에 다시 불이 붙는다. 괴로운 부분도 달달하게 넘어간다. 

이번 포스팅은 사실 가장 좋았고 재미를 배가 시켜주는 모드 세가지를 공유하려고 쓴 글이다. 서론이 긴 글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모드 소개만 달랑 하려니 심심해서 글을 좀 늘려 써 보았다.

1. cpecific's skill queue

스킬포인트를 미리 주욱 찍어놓을 수 있다.


군주, 영웅 스킬 포인트를 미리 찍어줄 수 있는 모드다. 거의 매전투마다 군주와 영웅들이 레벨업을 하게 되는데 스킬 찍어주는 것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한두마리도 아니고 10마리 넘어가면 레벨업이 더 이상 반갑지가 않다. 생각 난 김에 한 30초씩 투자해서 스킬을 죽 찍어두면 게임이 굉장히 쾌적해진다. 영웅마다 프리셋 설정도 가능하다고는 하는데 내 경우에는 사용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서인지 잘 작동하는 것 같지 않아 포기했다. 프리셋을 안쓴다고 하더라도 미리 스킬포인트 40개를 죽 찍어 줄 수 있어서 굉장히 편하고 좋다.


2. Vanilla spell damage tooltips

소중한 마법의 바람을 투자하는데 무턱대고 쏠 수 있나요


햄탈워 스펠 설명은 다수 부대에 효과적, 장갑에 취약, 개별 전투원에 비효율 등등 뭔가 알듯말듯 애매모호한 정보만 확인할 수 있다. 그냥 시원하게 데미지, 데미지 방식을 알려주면 좋을 텐데 쓰면서도 내가 제대로 된 스펠을 사용한게 맞나 긴가민가하다. 이 모드를 설치하면 더 이상 헷갈릴 필요가 없다. 데미지를 주는 방식, 대상, 확률, 데미지 형태 등등 필요한 모든 정보를 단순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다. 대충 느낌으로 감으로 스펠을 쓰면서 파일럿인 나 스스로를 단련시켜나가는게 게임의 재미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고통스럽다. 그냥 모드 까니까 2배는 더 재밌다.


3. 3% upkeep

'총 육군유지비가 3% 증가합니다'


3%는 뭔가 남겨두고 싶었다. 햄탈워2에는 군단을 하나 생성할 때마다 '추가' 유지비가 발생한다. 매우 어려움 난이도에서는 15%인데 이게 진짜 죽을 맛이다. 영지는 넓어져도 군단을 많이 굴릴 수가 없어서 너무 스트레스 받는다. 고기방패로만 구성된 군단 하나 만들려고 해도 전체 군단 유지비가 15%씩 증가하니 컨셉질도 어렵다. 매 게임마다 항상 소수정예 컨셉으로만 플레이해야 하기 때문에 시원하게 꼴아박는 물량전은 거의 게임 막바지에나 피날레처럼 슬쩍 맛볼 수 있을 뿐이다. 이 역시도 실력을 쌓아 내정을 탄탄하게 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게임 초중반이 너무 루즈해지고 재미가 없어 버티기 어려웠다. 추가 유지비 부담이 없으니 다소 구리더라도 멋진 병종, 컨셉에 맞는 병종으로 군단을 꾸리기가 쉬워졌다. 스케이븐 슬레이브 20카드와 화기반 20카드 두 군단이 몰려다니면서 적군 아군 가릴 것 없이 불바다를 만드는 장관을 보며 모드를 깔길 잘했다고 생각했다.15%와 3%의 차이가 정말 엄청 크다. 추가 유지비를 아예 없애는 모드도 있으니 '취향에 따라' 선택하길 바란다.

그러면 다시 햄탈워3 나올 때까지 숨 참고 햄탈워2를 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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