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섬 뇌조(초보자 추천!)와 메이지나이트 토벡


1. 메이지나이트는 혼자서 먼저 많이 해볼 것을 추천
- 룰이 쉽지는 않다(튜토리얼 시나리오 한 판(2시간 정도 소요)정도 돌리면서 룰북을 찬찬히 읽다 보면 '감'이 오는 정도)
- 기본적으로 협력 요소가 매우 적어서 보드게임에 흥미가 깊지 않은 사람과는 함께 플레이할 수 '없다'
- 보드게임 하면서 밤샐줄은 몰랐음
2. 정령섬은 목표만 낮게 잡으면 여러 사람과 함께 플레이하기에 부담이 없다
- 룰이 어렵지는 않다(혼자서 한 판(30분 정도 소요) 정도 돌리면서 룰북을 찬찬히 읽다 보면 기본 룰 숙지 가능)
- 초반에는 협력 요소가 적지만 중후반으로 갈수록 협력이 필수(그래서 1인플 보다 다인플이 좀 더 어렵다)
- 플레이의 눈높이만 낮추면 일반의 우려와는 달리 다인플도 무리가 없다. 그리고 다인플이 더 재밌다.
3. PC게임과는 확실히 다른 매력이 있다

정령섬(확장팩 원박스 정리)과 메이지나이트

본격 보드게임에 입문


보드게임이라고는 사실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부루마불이나 할리갈리, 명절에는 윷놀이정도만 즐겼고 그게 보드게임의 다 인줄 알았다. 나날이 발전하는 PC와 콘솔게임의 화려함에 눈길을 빼앗기고 모바일게임에 대한 혐오로 새로운 분야를 애써 외면하다보니 보드게임 쪽은 아예 까맣게 잊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다 여느 때처럼 마음이 허해져서 워프레임 노가다도 해보고 엘더스크롤 온라인에서 왁자하게 놀아도 봤지만 뭔가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집 밖에 나가봐야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 더 우울할 것 같았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무서운 것이 이런 나의 상태를 어떻게 알아챘는지 왁자지껄 파티 보드게임이 추천에 떴다.

노팅엄의 지방관이었다. 분위기에 취해 바로 구매는 했지만 당연하게도 실제 플레이로는 이어지기 어려웠다. '파티'게임이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파티는 무리였다.

그래도 보드게임에 대한 흥미가 사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구성물을 직접 만지작 거리고 세팅도 해보고 룰북도 읽다보니 실제로 플레이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나무정령과 숲정령 조합

찾다보니 1인플도 되고 다른 사람과 협력도 가능한 가장 유명한 게임인 정령섬이 눈에 띄었다. 확장팩 (!) 포함해서 만만찮은 가격이었지만 질렀다. 보드게임에도 확장팩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1인플이 된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운이 좋았다. 딱 사고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때마침 정령섬이 다시 출시되어 물건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드게임은 주류라고 보기 어려운 장르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재고를 남기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1쇄 2쇄 3쇄 이런식으로 다 팔리면 만드는 식이라 원할 때 물건이 없는 경우가 있다.

본격 AI와의 혈투


정령섬은 내가 섬의 수호정령이 되어 쉴 새 없이 쳐들어오는 인간 탐험대로부터 원주민이 오순도순 살고 있는 아름다운 섬을 지키는 게임이다. 별거 없는 것 같은데 조금만 방심하면 엄청 쳐들어와 섬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AI 맞다.

개성적인 정령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간 탐험대를 박살내준다. 번개 정령은 빨리빨리 파괴적으로 탐험대를 공격하고 불정령은 자연이건 원주민이건 탐험대건 뭐건 몽땅 불살라버리고 공포 정령은 겁에 질린 적을 몰아내는 식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정령의 고유 능력과 고유 덱(카드)다.

게임플레이를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 성장요소를 두었다. 일반 게임에서 캐릭터가 레벨업을 하면 스킬을 획득하듯이 정령섬에서는 정령이 성장할 수록 덱을 획득한다. 성장하면서 획득하는 덱은 공용덱이라 자신이 선택한 정령의 고유 특성에 맞춰 덱을 성장시킬 수도 있고 단점을 보완하는 식으로 덱을 성장시킬 수도 있다. 덱이 증가할수록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고 게임 클리어에 더 가까워 진다. 게임 후반부에 밀려오는 적들을 강력한 덱으로 몰아낼 때의 재미도 상당하다.

기본 게임은 처음에는 어렵지만 요령만 알고 나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엔딩을 맞이해서 허무한 경우가 있다. 그만큼 난이도가 그렇게 높지 않다. 내 정령이 강해지고 다른 정령과 힘을 합치면서 이제 뭔가 본격적으로 할 것 같은 순간에 게임이 끝나버리는 것이다.

기본 마나 컴포가 별로 안예뻐서 어항에서 돌을 몇개 빼왔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게임에서는 난이도를 조정하는 장치가 있다. 상대가 되는 탐험대의 국적을 지정할 수 있다. AI도 정령처럼 국적마다 각각의 강점이 있어서 정령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겨우 막아낼 수 있을 정도다.

게임을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즐길 수 있도록 시나리오도 준비되어 있다. 게임의 일부 규칙이 기본게임과 달라지기 때문에 기본게임에 익숙해졌다면 활용해볼만 하다. 다만 아무래도 새로운 규칙이 도입되는 것이다 보니 기본 룰에 충분히 익숙해져있지 않다면 괜히 게임만 더 복잡해지고 에러플의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에 나중에 시도하는 것을 추천한다.

정령섬은 랜덤성이 아주 크게 작용하는 게임은 아니다. 탐험대가 탐색할 지역, 덱성장을 위한 능력 선택, 공포카드, 오염카드 정도에 랜덤성이 있기는 그 폭이 다양하지 않고 판세를 뒤바꿀 정도도 아니다. 플레이어의 묘수 풀이에 즐거움을 더해주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내 경우에는 확률의 영향이 크지 않은 것에 유감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보드게임이다 보니 너무 묘수풀이로만 흐르는 것도 단점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가시와 발톱' 이라는 확장팩이 있다. 앞서 말한 랜덤 요소 외에도 플레이 단계에서 '이벤트'라는 요소를 둬서 플레이어가 예측하기 어려운 사건이 터져 나온다. 묘수풀이에 방해를 받아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파티게임적 느낌이 어느정도 생긴다는 점에서 분명한 강점이 있다. 또한 정령도 추가 되고 탐험대를 괴롭힐 수 있는 요소도 추가되기 때문에 살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이벤트 카드는 빼고 플레이해도 되니까 어차피 큰 상관은 없다.

플레이어, 정령, 원주민, 탐험대 간 느슨한 협동과 적대관계도 은근한 재미다. 플레이어들끼리 마냥 서로 지켜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초반에는 제 한몸 지키기도 벅차다. 정령이라고 해서 원주민을 반드시 지켜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다한이라 부리는 원주민이 정령을 몸바쳐 지켜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서로 있으면 좋고 없으면 좀 아쉬운 관계다. 탐험대도 기를 쓰고 정령과 다한을 공격하는 존재는 아니고 말 그대로 섬을 개척하러 온 것이다. 정령 능력이나 이벤트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한 역시 탐험대를 증오하고 눈에 불을 켜고 공격하는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다. 니 편 내 편 구분은 있지만 뚜렷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 느슨함에서 오는 아쉬움과 긴장감이 게임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이번엔 메이지나이트가 되어 인간세상을 박살내보자

50L 쓰레기봉투와의 크기 비교

맨날 당하고만 살라는 법은 없다. 정령섬의 리플레이성은 굉장히 뛰어나고 엄청 재미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다른 보드게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큰맘먹고 비싼 값을 치루고 구해온 정령섬이 성공하니까 다음 큰 결정도 더 수월해졌다. 어려운 룰 만큼 재미와 볼륨은 확실하다는 메이지나이트다. 마침 확장팩 포함 풀버전 울티메이트 에디션 3쇄!!! 가 출시됐다. 이번에 기회를 놓치면 몇년을 기다려야할지 알 수 없었기에 큰 고민없이 바로 질렀다. 이제 이쪽에서 쳐들어 갈 때다.

메이지나이트는 덱빌딩 탐험 게임이다. 정령섬과 마찬가지로 덱이 늘어나면서 할 수 있는 행동이 많아지고 강해진다. 다른 점이라면 정령섬은 이 능력을 지키는 데 사용하지만 메나에서는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데 쓴다는 점이다.

정령섬과 메나가 서로 완전히 다른 게임인 이유는 이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룰이 다르고, 강해지는 방식이 다르고, 맵이 어떻고 저떻고 차이를 나타내는 말은 많겠지만 정령섬은 지키는 게임이고 메나는 정복하는 게임이다. 나에게 익숙한 공간에 일정한 적들이 약간의 확률이 가미된 일정한 패턴으로 몰려오다 보니 랜덤성 얘기가 나왔다면 메나의 경우에는 다음 맵타일이 뭐가 깔릴지, 던전에 들어갔는데 어떤 몹이 나올지, 이길 수는 있을지, 또 이긴다 해도 과연 좋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등등 기대와 긴장이 교차하게 된다.

언박싱, 뭔가 많다

전투 자체는 랜덤성이 없어서 오히려 좋다. 적을 상대하기 전 실컷 대비를 하고 머리를 짜냈는데 주사위 놀음에 게임이 터져버리면 현타가 깊게 올 것 같다. 랜덤성은 전투를 결정하기 전 단계에 충분히 있다. 보상 카드는 뭐가 깔릴지, 어떤 지형이 나올지, 핸드는 뭐가 뽑혔는지 등등 다 보고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 적을 박살내러 가면 된다.

룰 난이도는 과연 소문대로 대단했다. 정령섬도 마냥 쉽지만은 않아서 자신감이 충만해져있었는데 메나를 처음 세팅하면서 각오를 단단히 했다. 다행히 튜토리얼 시나리오가 제대로 준비되어 있어서 차분히 혼자서 이 튜토리얼 시나리오를 게임 공략서와 함께 플레이 해 간다면 기본적인 룰을 완전히 암기는 못해도 감은 온다. 적어도 룰북 어디를 찾아봐야 하는 부분인지는 알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튜토리얼 시나리오를 플레이해볼 것을 추천한다.

대부분 메나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이유로 잔룰?을 드는데 이 표현보다는 볼륨이 크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뭐 계산이 복잡하고 규칙에 예외가 많고 기준이 뒤죽박죽이라서 일일이 플레이어가 룰북을 참조해야 한다기 보다는 등장하는 몬스터가 많고, 지형지물이 많고, 캐릭터가 많고, 보상이 많고, 스킬이 많고, 마법이 많고, 유닛이 많아서 이를 다 외우기 어려워서 룰북과 설명을 찾아봐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복잡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일단 한번 파악만 하면, 아니 감만 잡아도 게임에 푸욱 빠져들만큼 볼륨은 확실하다. 튜토리얼 시나리오 클리어를 통해 자신감을 채운 나는 곧바로 기본 시나리오에 도전했다. 튜토리얼에서는 활용해보지 못했던 스킬, 마법, 유닛, 유물에 눈이 돌아갔고 여태 겪어보지 못했던 적앞에서 무력감까지 느꼈다.

첫번째 시도는 압도적 패배. 라운드 제한 내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패배인데 라운드 내에 목표 지점 정복은 커녕 찾아내지조차 못했다. 오기가 생겨서 같은 캐릭터로 바로 두번째 시도를 했다. 다른 캐릭터로 하면 익숙치 못한 탓에 또 실패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첫번째 처참한 결과물을 정리하고 두번째 시도에 돌입했을 때의 시간은 자정무렵. 1시쯤 되자 눈이 감겨 정상적인 묘수풀이가 어려워 과감하게 자기로 결정했다. 못다한 플레이는 세이브해뒀다.(정리를 안했다.)

여러 시도의 흔적들

주말이다. 정신이 맑은 아침부터 게임을 로드해 플레이를 재개했다. 점심 먹을 때쯤 목표 도시를 발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핸드가 모자라 정복하지는 못했고 라운드 종료를 맞이했다. 캐릭터가 약한 것 같았다. 다른 캐릭터를 선택해서 세번째 시도를 해봤다. 네번째 시도를 했다. 또 캐릭터를 바꾸고 다시. 다시. 다시. 클리어 하고 시계를 보니 4시, 손에는 얼음과 방어 위주의 캐릭터인 토벡이 들려있었다. 날이 밝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더니 클리어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 때 밖은 어두컴컴했다.

여러 시도의 흔적들2

같은 보드게임이지만 다른 게임이다

정령섬은 경쟁적 협력, 메나는 협력적 경쟁 게임이다.

정령섬은 앞서 느슨한 관계라고 했는데 일단 플레이어 끼리 협력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섬을 지키는 것이 먼저다. 자신의 현신이 섬에서 모두 파괴되면 게임이 종료되는 데다가 능력의 범위도 현신을 기준으로 설정되는 만큼 탐험대를 몰아내야 한다는 목표는 같지만 현신이 제한적인 초중반까지는 내 현신 주변 즉 내 섬 위주가 된다. 다른 플레이어의 섬에 있는 다한을 모르는 척 슥 내 쪽으로 끌어오기도 하고 탐험대를 슥 밀어넣기도 한다. 서로 호흡이 맞아서 탐험대를 상대 현신쪽에 넘기고 상대는 강력한 능력으로 탐험대를 때려버리는 것처럼 정령 능력 간 시너지가 나온다면 환호성이 절로 터져나오면서 우애가 돈독해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그냥 내 섬만 지키고 상대방 섬은 더럽혀지는 결과를 낳는다.

메나는 1인플 최적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2인플이 더 재밌었다. 공통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점에서 협력게임일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턴 순서도 엄격하고 보상을 선점하는 개념이 있어서 플레이 과정에서 경쟁의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더 본격적인 경쟁을 원하면 PVP도 가능한 룰도 있지만 이쪽은 비추천이다. 일단 같이 하는 게임인데 다른 한명을 박살내서는 다인플의 의미가 없고 보상도 없고 재미도 없다. 달리기처럼 별도의 상호작용 없이도 충분히 경쟁의 재미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PVP는 필요없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경쟁 게임 특성상 아무리 PVP가 없어도 초심자와 함께 플레이하기에는 역시 아무래도 어렵다. 다인플을 위해서는 혼자서 충분히 플레이해보고 룰을 숙지하고 첫 몇판은 일종의 룰마스터로서 역할을 해줘야 그나마 될까말까다. 보드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정도 있지 않다면, 초심자와의 다인플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보드게임과 PC게임은 참 다르다. 머리로 생각하는 장점은 PC게임이 보드게임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룰이 시스템에 정해져있어서 에러플도 없고(가끔 버그는 있지만), 볼륨도 크고 깊이도 있고, 스케일도 더 크고, 세팅도 간편하고 등등등의 이유로 PC게임만을 해왔는데 두 보드게임을 거치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직접 손으로 만지작 거리는 컴포의 느낌. 바로 앞의 상대와 대화하면서 플레이하는 현장감. 감성이 이성을 덮다보니 에러플 조차도 유쾌한 에피소드로 남을 정도다.

사람과 함께 한다는 점이 보드게임의 매력이라면 반대로 최악인 점도 사람과 함께 한다는 점이다. 롤도 적을 잘못만나는 것보다 팀을 잘못만나는 것이 더 열받듯이 보드게임도 함께하는 사람이 별로면 정말 별로가 된다. 사사건건 플레이에 간섭하는 알파플레이어, 시간을 오래 끄는 장고맨, 승부에 목매는 승부사 등등 빌런도 많다.

다행히 정령섬과 메나에서는 게임이 복잡하기도 하고 서로 대놓고 협력만 하는 게임은 아닌지라 알파플레이어가 자리잡을 요소는 크지 않았다고 본다. 혼자서 모든 것을 파악하고 게임을 멋대로 휘두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메나 룰북에서도 염려하고 있는 것처럼 플레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협의가 없으면 게임이 복잡한 만큼 한턴 한턴에 시간이 너무 많이 끌려 지루해질 수 있으므로 시간 제한, 물리기 제한, 협력 논의 단계 제한 등 적절한 장치를 둬야 쾌적하고 즐거운 다인플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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