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두근 두근

이게 되네

현실라이프에 여유가 생기니 슬슬 게임 생각이 났다. 아주 어렸을 적 게임보이로 젤다를 즐겨보았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으로 까맣게 잊고 지냈었는데 최근 야생의 숨결에 이어 왕국의 눈물이 출시 임박이라 나만 빼놓고 다들 두근 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것이 왠지 억울했다. 

 

그렇다고 바로 스위치와 타이틀을 사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잠시 대여하기로 결정했다. 여러모로 놀랐다. 게임팩의 크기, 스위치의 선명함, 티비에 연결했을 때의 자연스러움 등 야숨을 켜기도 전에 놀랐다. 항상 PC게임만 하느라 콘솔을 완전히 잊고 살았다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링크... 링크. 부르는 소리에 잠을 깨고 동굴을 나와보니 탁 펼쳐진 세계가 현실에서 하이랄쪽으로 나를 확 끌어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힌트가 직접적이지 않음에도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막막함보다 이제 뭘해볼까하는 생각이 들게하는 분위기다. 지금에 와서 가장 기억에 남은 첫 경험은 내리막길에서 냄비뚜껑을 타 본 것이다. 이럴땐 또 은근 과학적이라 자갈밭 때문에 금방 부숴져서 넘어져버리긴했지만 오오 된다 된다를 절로 외치게 만들었다.

 

야숨은 과학적으로 현실세계를 정교하게 옮겨왔다기 보다는 문돌의들의 유사과학 판타지를 잘 구현한 게임이다. 불은 뜨겁고 얼음은 차갑고 쇠는 자석으로 움직이고 등등등 기본적인 물리법칙(?)만 납득되면 그 다음은 무조건 OK인 세상이 직관적이고 쉽고 좋다. 불을 지피면 상승기류가 발생해서 하늘을 날 수 있고 돛단배에 열심히 부채질을 하면 쾌속질주를 할 수 있다. 양력, 작용반작용, 자기장 등등등 뭔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별로 생각해본 적없는 것은 넘어가주니까 아주 간단하게 게임과 게임 세계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게 안되네

야숨에 대해 자유도가 넘치는 게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비선형적인 게임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런데 게임에서 자유도라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단순히 NPC를 죽일 수 있다고 해서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해도되고 안해도 되는 퀘스트가 많아야할까. 하나의 퀘스트를 해결하는 방식이 여러가지, 아니, 무수히 많은 방식이 있으면 될까. 이렇게 보면 야숨도 자유도가 높은 게임에 해당하는 조건을 많이 갖추고 있는 것 같다가도 또 완전 엉뚱한 행동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비선형성과 자유도에 대한 비교를 계속 생각나게 했다.

 

애초에 규칙이 없으면 자유도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면 이미 자유가 아니라 할게없는 무료함이다. 흙판 하나 갖다두고 무규칙 자유형 샌드박스 게임이라 칭할수는 없지 않은가. 탐험과 퍼즐이라는 주제에 맞춰 정말 제대로 설계된 규칙과 세계인만큼 '자유도'라는 잣대 하나로 게임을 평가하기에는 엄청나게 큰 무리가 있다. NPC는 죽이거나 소매치기를 할 수는 없지만 그 부분이 게임의 재미에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혹시나 자유도 이슈에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걱정일랑 제쳐두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랴

급하면 큰일나네

느긋하게 즐겨야 하는 게임이다. 엔딩? 보스 클리어?. 그냥 게임이 목적없이 표류하거나 무료해지지 말라고 하이랄에 긴장감을 살짝 불어넣어주는 아주 사소한 규칙에 불과하다. 앞서 말했다시피 규칙이 없으면 그걸 살짝 비트는 재미가 없으니까 게임을 좀 더 재밌게 즐기라는 제작사의 배려라고 생각하면 되시겠다.

 

게임을 대여한 입장이라 왕눈 출시전까지는 반납하자고 내 나름대로의 목표를 정했다. 주어진 기간은 역산해보니 보름. 보름 안에 하이랄에 평화를 가져와야한다. 첫 일주일은 정처없이 돌아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것은 한번씩 다해봤다. 마지막 일주일은 밀도감있게 메인 스토리에만 집중했다. 이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한눈 팔지않는 것이었다.

 

게임이 주는 재미는 첫 일주일이 압도적으로 컸다. 퍼즐도 재밌고 뭘 찾는지도 모르면서 뭔가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반면 마지막 일주일은 아무래도 시간과 클리어에 대한 압박이 있다보니 퍼즐이 조금만 어려워도 짜증이 났고 몬스터가 조금만 세도 외마디 비명을 지르기 일쑤였다.

 

그래도 변태적인 난이도는 전혀 아닌지라 어떻든 저떻든 클리어는 했다. 지금 이시점에서는 클리어의 감동보다는 탐험의 여운이 더 진하게 남고 모르고 지나쳐 갔을 무수히 많은 탐험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 기한에 제한만 없었다면 연중 내내 붙잡고 야숨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구경도 못해본 보물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

 

레드데드리뎀션2는 몇번 시도해봤지만 현실의 팍팍함 때문인지 쉽게 게임에 몰입하기 어려웠는데 야숨은 달랐다. 둘다 느긋하게 탐험을 즐기는 게임이잠 내 기준에서 레데리2는 느긋 보다는 느림으로 다가왔다. 야숨은 느긋하게 이것도 해보고 지루해질 때쯤 저것도 해보는 식으로 콘텐츠 배치 밀도와 보상이 적절했지만 레데리2는 아무래도 문돌이의 판타지보다는 현실에 기반한 게임이다 보니 그 부분에서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왕국의 눈물 출시를 축하하며..

스위치를 보유하고 계시고 야숨만 몇회차 돌리셨던 분들께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좋겠다. 다들. 

 

 

 

2023.01.01 - 현실이 힘들면 게임도 힘들다(레드데드리뎀션2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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