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억지를 부린다

2020. 6. 21. 10:02

원인과 결과, 근거와 주장


내가 알던 세상이 부정당한다. 상식이 무너져 내린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들이 그게 옳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전에도 다뤘던 'PC 콘텐츠'에 대한 얘기다. 굳이 PC 콘텐츠라 칭한 이유는 사상과 생각 자체에 대해서는 굳이 욕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주먹질할 자유는 타인의 코앞에서 멈춘다는 말처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누구에게나 생각의 자유는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것이 내 상식이다.


'나와는 다를 수 있지'


 나름의 결론을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누군가 불러세운다.


'저기요, 님 생각은 틀린 생각인데요?'


무엇이 틀렸는지, 왜 틀렸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정해놓고 주장을 펼친다. 원인과 근거는 없다. 그들은 억지를 부린다. 


편견과 선입관, 굉장히 좋지 못한 의미로 쓰이지만 나름의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짧은 시간에 다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간은 세상을 대분류로 큼직하게 나누고 거기에 기대어 짧은 시간에 판단한다. 이 행동 자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콘텐츠에는 옳고 그름이 있어서 대분류의 내용이 틀린 경우에는 편견, 옳은 경우에는 상식(common sense)으로 받아들여 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만큼 견고해서 좀처럼 깨기가 어렵다.

!맹견주의! 맹견이 아니라고 볼 이유 없음. 아무튼 맹견임.


야심한 시각. 가로등 조차 불안한 골목길을 혼자 걷는다. 코너를 돌자 어두운 구석에 한무리의 사람들이 낄낄대며 모여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CCTV는 있는지, 주변 치안은 어떤지, 이 지역 범죄통계는 어떤지, 경찰이 주변에 있는지는 파악할 시간은 없다. 상식에 기대서 판단을 내리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돌려 골목을 빠져 나올 뿐이다.


골목 밖에 사람이 있었다.

'저기요, 님 생각은 틀린 생각인데요?' 


골목 안에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이 쪽으로 다가온다. 

냅다 튄다.


'그래 평생 도망만치고 살아라. 교육도 제대로 못받아서 무식한 차별주의자 XX야!!!!!'

이유를 알 수 없는 엄청난 분노를 뒷통수로 받으며 멀어진다.


골목을 지나가기 위해선 더 많은 근거가 필요했다. CCTV, 비상벨, 더 밝은 조명, 조명이 더 밝았다면 모여있던 사람들의 정체가 유모차를 끌고 아이와 산책 나온 부부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부부강도단일 수도 있고 다른 변수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일단 그 골목길을 지나가는 데 큰 거부감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아는 세상이고 상식이다.


기존의 상식을 허물고 그것이 편견에 불과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근거가 필요하다. '여자 혼자 밤길을 걷는 것은 위험하다'를 '혼자 밤길을 걷는 것은 위험하다'로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여자 혼자 밤길을 걷는 것은 안전하다' 로 바꾸기는 어렵다. 여성이 범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당위성만 펼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범죄를 피해자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근거없는 비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과와 개연성은 콘텐츠에 대한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PC 콘텐츠는 정당함과 당위성에 함몰된 나머지 인과와 개연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여태까지 축적된 상식과도 거리가 있어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부족한 부분을 상식으로 채워넣기도 어렵다.


부모님을 죽인 원수. 복수를 위해 이를 간다. 마침내 성공. 하지만 이내 허무함과 죄책감이 밀려온다.


라는 스토리의 콘텐츠는 진부하긴 하지만 일반의 상식적인 감정선과 닿아 있기 때문에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공감이 된다.


부모님을 죽인 원수. 사랑에 빠진다. 결혼에 성공. 아이를 낳는다. 행복하게 산다.


반면에 이런 내용은 피치못할 사정이나 오해가 있었다든가 기억을 잃었다든가 자신을 구해줬다든가 뭔가 설명이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복수는 나쁘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 사랑은 좋은 것.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좋은 말이긴 한데 이것만으로는 납득할 수 없다.


그래서 전작이나 원작이 있는 콘텐츠의 경우 PC 콘텐츠와 궁합이 좋지 않다. 자신에 대한 무한한 확신과 열정적인 정의감으로 무장한 채 기존의 상식(전작 또는 원작의 설정)을 파괴하는 데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쪽이 옳기 때문에 설명도 이해도 납득도 필요없다. 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 예, 아니오로만 답할 것을 강요당한다.


심연을 들여다 볼 때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본다


요즘엔 점점 저런 콘텐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욕을 먹는다. 소비자로서 내가 욕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눈치가 보인다. 폭력을 옹호하냐, 차별주의자냐, 무식하냐 등등 그들의 주장만큼이나 억지스러운 비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폭력을 얘기하면서 생각이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해 폭력적으로 유린한다. 차별없는 세상을 말하며 생각이 다른 사람을 차별적인 언어로 공격한다. 전에 글을 쓸때만 해도 그들의 게으른 선민의식이 꼴보기 싫었는데 이제는 점점 두려워진다. 그들과 그들이 만든 콘텐츠에 대한 선입견이 슬금슬금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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